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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r 19.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5

<미디발 피이스트> (A Medieval Feast, 중세의 잔치)

<A Medieval Feast>     Aliki         1982      HarperCollins Publishers   


알리키(Aliki)는 논픽션 인포메이션 그림책 작가로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조사와 고증을 거친 정확한 인포메이션을 전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중세 관련 여러 기록-그림 기록, 테피스트리, 미술 작품 등을 참조하여 쓰고 그린 <미디발 피이스트>(A Medieval feast)는 오래 전의 인간사회의 낯선 정보를 아름답고 정교한 삽화에 실어 넣었다. '정보는 아름답다'는 말이 알리키의 <미디발 피이스트>에 와서 다시 한번 증명되는 것 같다.


<미디발 피이스트>(A Medieval Feast)는 중세 영국에서 왕의 행차를 맞은 영주가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이때 장만하는 화려한 음식 차림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보여준다. 인포메이션 그림책이지만 한 가상의 영주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흐름이 있다. 삽화와 달리 이야기 본문은 최소한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부가적인 정보를 따로 그림 아래 작은 글씨로 제시하고 있다.  


제목과 같이 중세 시대, 영국 장원(manor)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 안에서 영주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농노의 일상을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 중심으로 보여준다. 진귀한 음식이 넘쳐흐르는 잔치는 왕의 일행과 손님들을 위한 것이지만 알리키의 삽화는 왕을 맞는 잔치를 위해 온갖 노력을 바친 성 안의 사람들도 균등히 묘사하고 있다. 펜과 물감 크레용 등을 사용한 삽화는 색의 채도와 명도를 조절하여 귀족이나 잔치에 초대된 손님 그리고 잔치 음식 차림의 묘사는 진하고 밝게 표현하고 농노의 일상 모습이나 일하는 모습은 담담한 채색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넓은 초록의 정원과 그 뒤로 하늘에 맞닿을 듯이 서있는 흰색의 장대한 궁전에서 시작된다. 왕족의 타고난 존엄을 자랑하듯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궁전은 하얗게 빛난다. 궁전 앞에 왕과 왕비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서서 분수 가에 노니는 꿩과 공작, 사슴 등을 바라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왕과 왕비의 위용에 걸맞은 복장과 곁에 둔 애완견 그리고 빼어난 몸집의 사냥개는 모두 왕권의 완벽함을 자랑한다. 바로 앞에 흐르는 실개천과 오리들, 그 옆의 열매가 복스러운 과일나무, 꽃과 풀과 나무도 흐트러짐 없이 아름다워 만물을 장악하는 권력의 즐거움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옆 페이지에 글은 ‘왕이 곧 긴 여정을 위해 출발한다고 궁궐이 발표했다’라고 되어있다. 고사리와 꽃 그림으로 페이지의 테두리를 장식하여 왕의 권위를 아름다움으로 장식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역시 같은 구도로 하늘을 등지고 장대하게 서있는 영주의 성이 있다. 영주의 하늘은 왕의 하늘보다 훨씬 평이한 푸른색이다. 그리고 그의 성은 누런 흙 빛을 띠고 있다. 그 앞으로 펼쳐진 풍경도 역시 자연의 동물과 식물을 보여주고 있지만 보고 즐기는 자연이 아니라 일하고 생산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소를 모는 농부와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냇가에서는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다가오는 왕의 행렬

그 옆 페이지에는 역시 정식으로 깨끗이 차려입은 젊은 영주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왕의 행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가상의 캠덴턴(Camdenton) 성의 영주다. 왕의 행차를 알리는 방을 들고 있는 부부의 얼굴은 근심과 놀람으로 가득 차있다. 글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왕과 그의 만만찮은 수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가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페이지 아래쪽에 배치된 작은 띠는 벌써 출발한 왕의 행차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진한 초록의 자연과 탁한 하늘빛이 강조되어 왕 일행의 위세와 들이닥칠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영주 부부의 걱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띠는 왕이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의 모습을 그리며 왕의 행차가 점점 다가오는 형세를 보여준다.


이어 계속되는 페이지는 왕을 접대하기 위해 분주한 장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이 묵을 방을 새로 단장하기 위하여 비단을 짜고 왕의 수행꾼들이 묵을 천막을 친다. 잔치음식 준비를 위해 사냥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고, 밀가루와 버터를 만드는 모습도 보인다. 그 후에는 요리사와 시중꾼들이 잔치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는 거대한 부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침내 왕의 일행이 도착한다.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까지 모두 모이자 잔치가 시작되고 요리사들이 만들어 낸 진기한 요리를 먹고 마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흥을 돋우는 광대들의 연기와 더욱 진기한 모습의 요리 대접으로 잔치는 이어진다. 마침내 연회가 끝나고 다음 날의 새로운 만찬을 기대하며 침실로 들어가는 왕과 왕비의 모습과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앉아 밤 인사를 하는 영주 부부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구운 파이에서 날아 나오는 검은 새

알리키의 텍스트는 간결하나 그의 삽화는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토끼와 여러 종류의 새를 잡고 연어와, 뱀장어, 그리고 송어를 잡았다"라는 텍스트에 맞춘 그림은 새와 물고기를 잡는 방법까지 알 수 있도록 정교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상류층의 옷차림과 식탁의 모습, 식탁 예절 등도 관찰하고 따져 볼 수 있도록 알리키의 삽화는 상세하며 즐겁다.


중세 왕족의 잔치 음식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기묘한 아이디어를 가진 요리사가 귀족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냈을 기상천외의 음식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중세 귀족 음식의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콕켄트라이스(Cockentrice)는 아기돼지와 수탉의 몸을 반으로 자르고 그 속은 산해진미로 채운 뒤 각 각 다른 반쪽에 붙여 요리하고 장식한 음식이다. 또 손님 상에 놓는 순간에 살아있는 새들이 날아 나오도록 설계된 거대한 파이도 볼 수 있다.


이 요리들은 왕의 권위에 맞는 고귀한 음식인 듯하면서도 그 화려함이 지나쳐 보인다. 알리키는, 그러나, 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하고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이 보여줌으로써 미디발 피이스트의 화려한 음식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치도록 긴 음식의 행렬 속에서도 의기양양하게 음식을 내오는 시종, 과도하고 기이한 음식에 질린 표정을 짓는 왕과 왕비, 그리고 오히려 느긋한 영주 부부의 모습에서 과도한 잔치 음식과 그 준비에 투영시킨 각 계급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읽어진다.


새끼손가락을 치켜들고

캠덴턴 성의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 모두 새끼손가락을 날렵하게 치켜들고 아끼며 음식을 먹는다. 알리키는 부가 설명에서 대부분의 손님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고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씻고 다시 먹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음식에 뿌린다고만 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소금 그릇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중세의 음식, 소금, 칼과 포크의 사용, 그리고 새끼손가락. 알리키의 설명이 충분한 것인가? 그런 질문이 나올 정도로 치켜든 새끼손가락들은 발칙해 보인다.

 

알리키가 그려낸 이 가상의 잔치 모습은 중세 인간이 살아낸 심상치 않은 삶의 모습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인간은 어떤 세상이든 살아내고 그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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