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Mar 30. 2022

그림책이든 영어든 뭐가 중할까?


그림책을 들여다보며 아이들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상관하다 보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 다음 이야기는 그중 하나로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곤혹스럽게 기억된다. 내가 만지는 대부분의 그림책이 영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림책이 공부책이 되는 상황에 자주 접하게 되고 '영어'와 '그림책' 이란 말을 같이 붙여 들으면 각 각의 말이 무슨 몹쓸 말처럼 들리며 이제 그만 듣고 싶단 소리가 나오게 되는 지경이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년을 받은 대만의 젊은 대학교수가 부인과 초등 1학년생 아들을 동반하여 1년 예정으로 막 학교에 도착했다. 아들의 영어교육을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낀 부모는 영어지도를 맡아줄 선생님을 물색하였고 박사학위를 방금 받고 미국에 체류 중이던 아동문학 전공의 중국인 지인이 그 일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되었다. 그 박사는 자기가 학위를 받고 아직은 제 집처럼 드나드는 모교의 아동문학-교육 박사 세미나 수업을 방문하여 그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칠 아이디어를 얻어가고 싶었다.


 이 세미나 수업은 그 박사와 개인적으로 친한 교수가 개설한 것으로 이전부터 그의  클래스메이트였던 박사과정생 서 너 명과 마침 그 학교를 방문하고 있던 나까지 하여 단출하고 스스럼없는 분위기였다. 그 박사는 학기 초반에 몇 번 참여하였고 세미나 내용인 그림책 읽기와 맞물리며 모두 이런저런 ‘영어 과외’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6살짜리니  어떤 책이 좋을지, 영어를 거의 모르는 아이니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또 지도를 맡는 사람이 교육은 모르는지라 이런저런 방법론까지 주고받았다.


아이가 아직 낯선 환경이라 엄마가 수업할 때 곁에 같이 있고, 그림책을 하나 읽어주었지만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박사가 말한다.


“그렇지. 엄마가 곁에 있으니 애가 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일 년 후 돌아가기 전까지 빨리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애도 들었을 수밖에 없는데...”


박사 왈 “대만 있을 때 무얼 하고 놀았는지 물어보았는데 집이 바닷가 근처라 바다에 많이 갔다고 하더라.”


 “그러면 바다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책을 보고 같이 바다에서 논 이야기, 뭐가 재미있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게 좋겠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좋은 바다 관련 그림책도 한 권 골랐다.


박사는 그다음 주에 다시 세미나 수업에 왔고, 빌려간 그 바다 그림책을 읽었는데 아이가 반응이 별로 없고 바다 이야기를 물어보아도 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는 여전히 곁에 앉아 있었다고. ‘니들 아동문학-교육 어쩌고 전공한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냐’는 나무람이 살짝 실린 보고다.


교육보다는 문학 비평이 본 전공인 담당교수나 다른 박사 후보들보다 내가 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보니 그 나무람이 내 앞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영어를 모르는 애를 데리고 영어 그림책을 보고 그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게 좋은 방법인지 박사 자신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전해 왔다.


박사 왈, “이야기를 시키니까 그 아이가 ‘자기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하더라.”


홀연히,

엄마와 낯선 아줌마 선생 사이에 앉은 조그만 남자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애써 감추고 있지만 선생님의 질문에 뭔가 바른 대답을 하고 진도가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안달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는 영어 그림책을 가지고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키고 있다. 뭔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모든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되고 또 다른 이상한 것을 해야 될 것 같은 “위험” 밖에는 느껴지는 것이 없다.


그 아이가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며 영어 과외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는 자각이 확 밀려왔다.


미안했다.

분명히 영어 공부하는 것이라 했는데,  엄마는 옆에서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있는데 놀았던 이야기, 좋아하는  이야기, 바다 이야기를 하자고, 해보라고 하니  낯선 상황이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도 아닌 동양권 어떤 교육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빨리 배워야 한다는 신호를 주며 동시에 '너의 생각' 말해보라고 하는 적이 있었을 것인가. 대답은 당연히 ’ 모른다,’ ‘아무 생각 없다,’ ‘그것 좋아하지 않는다였을 것이고  아이가 주도적으로  생각은 ‘ 낯선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였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엄마가 옆에서 입만 쳐다보고 있으면 애가 스트레스받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할 것이니 엄마는 나가시라고 하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한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지만 박사는 별로 공감하는 기색이 아니다.


사실은, '그림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죠'라고 하고 싶었지만 걸 알아차리지 못한데 대한 질책으로 들릴  같아 입도 벙긋 못한다. 그림책을 추천하니 그것만 읽어주면 애가 금방 반응하고 내용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나아가서 단어를 이것저것 알아차리거나 등의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박사는 기대했다는 것이었나? 무엇보다  박사가 교육은 모르고 분석만 하던 사람이라 알파벳을 겨우 그릴 애를 데리고 단어장이 날아다니고 '  쓰기 숙제' 같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림책과 단어 공부란 말이 같이  나오도록 미리 방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박사를  믿어서.


그림책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할 문제는 넘어간 것 같았고 아무쪼록 박사가 무엇을 하든 그 속에서 잘 판단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는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박사는 생각지 못했나 본데

그림책은, 무엇보다, 모든 것이 낯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주고 그림과 새로운 모양의 글자가 만들어 내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세계가 앞으로  것이라는 희망을 전해줄 물건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이의 상황에서 박사의-우리의 시도는 오히려 스트레스였던 것이 분명했다. 만약  어린 친구가 미국 오기 전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했었다면 차라리 그렇게 접근한 것이 그림책이 있든 없든  아이한테는 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박사는 세미나 수업에 놀러 오지 않았고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몇 달 후 길에서 우연히 박사를 만나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지만 그 아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 후 지금까지 그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휴!' 하며 잠깐 몸을 움츠릴 뿐이다.



영어든 그림책이든

많이 읽으면 말도 늘고 글도 는다. 거의 자동이며 우리 모두가 그걸 경험적으로 안다. 익숙하지 않은 글로 써진 그림책이면 과정이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중간중간에 적절한 "교육" 특별히 들어가 주어야 계속 진행이   있다. 동시에, 사람들이 모두 같은 정도로 글을 읽지 않는 것처럼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글을 읽을  있어도  내용에 깊게 빠지는 것이 어렵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책이  재미있는지 금방 깨달아지지 않고 따라서 책을 읽고 은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또, 한국에서의 영어처럼 주변에서 사용하지 않는 두 번째 언어일 때는 책을 읽게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새로운 말의 기본 어휘가 부족한 어린아이에게 영어(그림)책을 읽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 아이가 새로운 말과 글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싫어하면서 읽으면 읽어도 말이 더 풍부해지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공부)와 그림책 두 개를 섞어서 멀쩡한 애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영어 그림책 보고 즐거워하는 경험 좀 빠졌다고 부족한 사람으로 크거나 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엄마가 영어 그림책을 가지고 '엄마랑 책 읽자'하면 '그 책 싫어! 가져오지 마'하고 소리 지르며 거부하는 애들도 많다.



본 글의 내용과 사진 이미지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22. Jane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을 읽어본다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