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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l 25. 2022

시원한 한바탕 물놀이

그림책을 읽어본다 13:  <검피 아저씨와 배 타기>

<Mr. Gumpy's Outing>

John Burningham    1970      

 Henry Holt and Company


반복의 즐거움.

예상하고 있는 일의 반복적 루틴. 

반복적인 루틴을 따라갈 때 우리의 뇌는 쉰다.

그리고 그 일이 상쾌한 클라이맥스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 진심으로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때는 우리의 몸도 마음도 다 평안하다.


이렇게 찌는 날에는 아이든 어른이든 제일 즐거운 것이 무엇일까?

시원한 물속에 들어가 한바탕 놀고 물가에 앉아 몸을 말리며 몸과 마음을 식히는 것이다.

그리고 맛있는 것 먹는 것.

바로 그거다.


세상이 단순했던 옛날 옛적에는 바다까지는 못 가더라도 가까운 계곡 정도는 찾아 이 시원한 물놀이를 맘 편히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단순한 시절에는 먹을 것을 집에서 다 준비해 가야 했으니 엄마가 그 전날 하루 꼬박 땀에 절었겠다--엄마의 노고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나마도,

돗자리를 깔아 놓고 닭을 삶아 파는 사람들이 계곡 근처에 등장하기 전, 딱 그때까지만 그런 여름놀이가 가능했다. 그 후로는 모두 지갑 들고 어디로 가야 마음이 덜 덥게 시원한 물이라도 한 번 뒤집어 쓸까 반 근심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어른들은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쨌거나,

끈끈한 몸을 물속에 던져 시원하게 놀다가 평소에 먹어 보지 못한 별미를 먹는 즐거움을 여름에는 꼭 누려야 한다.


여기, 근심이 많을 엄마 아빠를 대신해 물놀이를 시켜주는 검피 아저씨가 있다.


한국은 아니고 심지어 동화의 나라다.


물 가에 살며  조그만 노 젓는 배를 가진 검피 아저씨는 더운 날이면 배를 띄워 집을 나온다. 이곳저곳에서 쫓아 나오는 동네 아이들을 차례대로 태우며 뱃놀이가 시작된다

동네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사람은 둘 뿐이고  나머지는 동네 동물들이다. 토끼, 고양이, 개, 양, 돼지, 닭, 송아지, 그리고 염소가 그의 동물 승객이다.

이 승객들이 탈 때마다 검피 아저씨는 한 가지씩 주문한다. 주의사항이다.

아이들 둘 한테는 싸우지 말라고,

토끼한테는 깡충거리며 뛰어다니지 말 것을,

염소에게는?

그렇다.

누구 들이받지 말라는 것.  

그런 주의사항이다.

모두 그러지 않을 듯이 타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다 안다.


모두,

특히 검피 아저씨는 언제쯤 이 승객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게 될지도 안다.

주의사항의 단어가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질 때,

주의하고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이 다 할 때쯤이면

전부 동시에 본성을 드러내고,  그다음은 자연스레 배가 뒤집히고 모두 물에 빠지는 순서다.  

시원하게.

검피 아저씨는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라고 하지 않는다.

이 뱃놀이의 클라이맥스는 물에 모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빠지는 즐거움을 뺄 수 없다.


몸속에 남아 있던 여분의 에너지가 그 북새통에 다 소진된다. 그리고 그늘로 올라앉아 몸을 말리는 시원함은 여름 낮의 즐거움이다.


그런 후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모두 검피 아저씨의 집을 향해 들을 건너간다.

“우리 집에 가서 차 마시자”라고 아저씨가 초대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찻잔과 멋지게 장식된 케이크가 차려진 테이블에 모두 얌전히 둘러앉았다.

제대로 차려진 티 타임의 호사다. 검피 아저씨는 윗 옷 재킷까지 차려입었다.

이번엔 주의사항 없이도 모두 차분히 앉아 점잖게 맛있는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시간.

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검피 아저씨는, “잘 가라, 또 타자”라고 인사한다.  


바로 지난 배 타기에서도 꼭 같이 했을 것이고 모두들 다 잘 알고 있다. 이렇게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는 여름 내내 계속될 것이기에.


이 뱃놀이를 자꾸 들여다보면 두 가지 색깔에 그 즐거움이 농축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는 초록 물빛이 그 하나다.  초록 물그림자라 해도 좋겠다. 검피 아저씨 집의 뒷마당, 바로 물 앞은 초록 물그림자가 비쳐 지붕 끝까지 온통 어른거리는 초록 물 빛에 잠겼다. 더운 여름날의 오아시스다.


그리고 투명한 태양 빛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

태양 빛은 색이 없다. 사물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그리고 그림자마저 삼켜 버리는 한낮의 태양은 그 흔적을 약간의 색으로 남길뿐이다.

노를 젓는 검피 아저씨의 모자에 받치는 노랑 빛이 태양의 흔적이다. 모자 머리 부분에 앉아있다.

강물 빛이 반사된 뱃전 아래로 물그림자가 져있다.  태양의 흔적이다.  

그리고는

색깔을 증발시켜버린 태양은 점으로 선으로 그 빛을 보여준다.

점점이 원을 그리며 뻗어오는 햇살,

내리꽂듯 직선으로 뿜어오는 햇빛,

가로 세로 무수한 선으로 사물에서 반사하는 한여름 공기 속의 햇빛.

눈부시도록 투명한 태양 빛이다.


검피 아저씨네 뒷마당의 초록 물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아, 시원해’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림책의 대가 존 버닝햄이 우리에게 주는 여름 선물을 제대로 받는 것이다.

거기에 보태어,

채색 없이 무수한 펜 놀림으로 빈 페이지에 떨어지는 직선의  태양 빛을 보고 ‘ 아 뜨거워 , 햇살이 눈부셔’까지 느끼게 된다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가 그려주는 여름의 즐거움은 이미 우리 것이다.


검피 아저씨와의 반복적인 뱃놀이는 그 이야기 속에서든, 현실 세계의 여름 책 읽기로든 즐거운 루틴을 선사한다. 루틴으로 여유가 생긴 우리 뇌의 그 빈 공간으로 차오는 형용할 수 없는 평안함!

우리는 그렇게 시원하고 평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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