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Oct 07. 2022

말 잘 듣는 개

그림책을 읽어본다 15: <마사, 말하는 개>


<Martha Speaks>   Susan Meddaugh    1992   Houghton Mifflin Company


어린이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많은 부수가 팔리지 않는다. 작가가 그림책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면 그 그림책은 아주 유명한 것이고, 만약 거기에서 더 성공적이려면 거의 인구에 회자하다시피 해야 한다. 이런 그림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비평계에서 절찬을 받고 동시에 큰 상을 탄 작품들이다.  


이렇게 큰 상을 받거나 비평적으로 절찬을 받지는 않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작가는 그 책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런 그림책도 있다. 당연히 판매 부수는 밀리언 셀러는 훌쩍 넘을 것이다. 바로  <마사, 말하는 개>가 그런 그림책이다.*1


출판사 휴턴 미플린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던 수잔 메도우는 집에서 키우던 개에 관한 이야기 아이디어가 이 그림책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당연히 본인이 일하던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으므로 출판할 곳을 찾느라 애를 쓰는 보통의 작가들의 수고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아이디어라고 말할 정도로 흥미로운 것이라 대중의 호응을 중시하는 출판사에게도 주저할 이유 없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역사 풍속 작가 유발 하라리의 말을 대입하면 비평계의 절찬을 받는 정도의, "진실을 추구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은 아니지만 즐겁고 인기 많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 같은 것이다.”*2


<마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그 이후 시리즈로 다섯 권의 마사 관련 그림책이 더 만들어졌고 심지어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이제 수잔 메도우는 본인이 즐기든 아니든 개, 마사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작가가 되었다.


<마사, 말하는 > 이렇게 성공적인 이유는 그럼 무엇인가? 그림이나 줄거리가 어린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요소가 전혀 없고, 부드럽게 흐르면서 순서대로 따라오는 깜찍한 클라이맥스까지, 이야기가 즐겁고 편안한 것이  이유다.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하다.


먹기 싫은 알파벳 수프를 앞에 놓고 앉아 울상을 짓던 헬렌이 엄마가 안 보는 사이에 개, 마사에게 수프를 주어 버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프에 들었던 알파벳 글자 모양 건더기가 마사의 위로 가는 대신 뇌로 가버렸고, 그리고 일이 일어났다.


그날 저녁에 마사가 돌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사는 헬렌네의 달마티안 비글 잡종견이다.


마사의 일성은 식구들을 향해 "지금  밥시간 아니에요?"라고  것이다.  말이 주인공 마사의 주책스럽고 '눈치 100'이며 식탐은 어떤 다른 개도 따라갈 수 없는 특징을  말해 준다. 어린이들이 싫어할  없는 캐릭터다.


말을 하게 된 마사는 늘 하던 대로 그 특유의 주책스러움을 발동하여 가족들의 온갖 일상에 간섭하며, 특히 이번에는 말까지 곁들이며 좌충우돌이다.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설화(舌禍)는 식구들을 불편하게 한다.    


말하는 개를 신기해하고 뽐내며 사람들에게 자랑까지 하던 가족은 얼마 가지 않아 마사의 말을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만 닥쳐!" (Shut Up!)라고 소리 지른다. 신이 나서 말을 하며 온갖 일을 만들어내던 마사는  한마디에 의기소침해 그만 입을 닫는다. 뿐만 아니라 밥도 먹지 않는다. 식구들은 놀라서 마사를 달래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녀의 밥은 다름 아닌 알파벳 수프였는데, 그래서 마사는 스스로 입을 닫기도 했지만 말을 점차로 못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집에 도둑이 들었다. 혼자 있던 마사는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 전화를 하여 도둑을 잡고 집을 지켜내는 쾌거를 이룬다. 가족들은 마사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녀가 수다를 늘어놓더라도 이제는 조금은 이해를 해주고, 마사 또한 본성대로 주책을 떨면서도 가족들의 눈치를  살펴 적절한 선을 넘지는 않았더라는 즐거운 해피엔딩이 이야기의 전부다.  


이렇게 흥미롭고 웃음을 주는 개 이야기가 그리 흔치 않다.


마사의 설화  백미는 집에  손님에게, "엄마가 그러는데 전에 보내주신 프루트케이크는 개도  먹을 음식이래요. 근데 먹을만했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먹을만했다는 부분은 백미  백미다.


또, 식구들이 TV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마사가 끊임없이 사족을 달며 이야기를 해대 제대로 드라마를 볼 수가 없다. 마사의 말 폭풍이 이 지경에 이르자 가족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예의 그 "입 닥쳐!"가 나와버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편안하고 웃음이 넘치는 이야기에 맞춰 일러스트레이션도 밝은 색채의 수채화와 펜화를 섞어 등장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캐릭터의 특성을 독자에게 강요하듯 진하게 채색하는 것을 삼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사의 주책과 설화 부분을 글로 말풍선이 넘치도록,  페이지에  오듯 써넣어 마사의  융단폭격을 과장되게 그려놓았다.


그리고 과장이라면 무엇보다, 달마티안 비글 잡종인 마사의 눈은 그 흰자위의 크기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영락없이 '미쳤다’라고 해야 할 정도로 눈에 띄게 표현되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이유를 이렇게 그림이 더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삽화가  이야기를 특히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는 부분으로 이 가족의 거실 모습을 예로 들 수 있다.

늦은 오후의 헬렌네 거실을 보면,

1. 꽃무늬가 예쁘게 그려진 큼직하고 푹신한 일인용 안락의자 두 개, 각 각 다른 꽃무늬로 두 개가 놓여 있다. 배경 없는 빈 페이지 중앙이다.

2. 신문을 보고 있는 아빠가 앉은 의자는 왼쪽을 보고 있고

3.  그  옆으로 90도 방향 오른쪽으로 아빠를 등지고 놓인 의자에는 엄마가 앉아 있다.

4. 엄마는 책을 보고 있고 편안한 차림에 신고 있던 양말은 발치에 벗어 놓았다.

5. 두 사람 다 꼭 같은 램프를 옆에 놓고 있다.  

핼렌이 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모양이고 마사가 그 앞 거실 바닥에 앉아서 예의 밥 달라는 말을 하는 순간이다.   


 장면은 어떤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가족은 격식을 특히 중요시하지 않고 각자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권위의 억압이 느껴지지 않고 편안하다.    


 편안한 느낌은   이야기가 깔고 있는 중산충 가정의 안전함으로  강화된다.  중산층의 가치 체계는 '기존 질서를 존중하면 아무 걱정 없고 모두가 안전할 것이다'라는 가훈 같은 것이다. 식구들이 즐거워할 만큼만 행동하고, 쓸데없는 행동은 하지 않으며, 집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이를 구하기 위해 행동을 해야 한다는 바른 행동의 암묵적 요구다.


마사가 구분하기에는  힘들 수도 있다.  그림책을 읽을 예닐곱 살짜리도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기존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가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견고하며 어릴 때부터 배우는 가치관이어서  중요시된다.  가치에 따라 행동하면 가족들은 행복하고 나는 한없이 사랑받을 것이며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안할 것이라는 암시가 전편에 깔려있다.


 메시지는 전체 삽화에서도 분명히 읽힌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말하는 그룹핑을 통해서다.


 페이지 삽화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헬렌은  그룹으로 마사는 다른 한 명 그룹으로 마주 보도록  위치가 설정되어있다. 가족  사람 () 마사다. 이야기   마사는 자신의 능력, 행동거지를 가족에게 보여주고 가족들은 함께 이에 즐거워하거나 대응한다. 아직 가족과 마사는  편이 아니다. 도둑을 물리친 마사가 의기양양하게 엄마 소파에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마사는 가족들과 함께 있다. 가족들을 마주하는 시선 설정이 아니라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가족들은 그의 뒤에서 마사를 지지하고 있다. 마사는 엄격한 기존 질서를 따르고 이를 지켜내 이제 같은 그룹으로 인정받게  것이다.


평등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그 아래에 깔린 견고한 중산층 가치 체계의 수호 위에서 평등하다는 의미다. 먹기를 거부한 마사의 입맛에 맞게 새 수프를 끓여대느라 가족들이 부산한 부엌에는 알파벳 수프 캔이 찬장에 가득 들어 있고 쓰레기 통에는 빈 수프 깡통이 넘쳐난다. 풍요가 넘치는 중산층의 편안함도 당연히 이 평등과 안전의 전제로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며 '차이코프스키' 운운은 무슨 연유인가?


어린이 그림책이라고 해서 즐거움과 평안과 안전의 보장 만을 추구하는 것이 적절할까라는 의문이 있다. 중산층의 한결같은 평안을 추구하는 가치의 중요성과 그리고 그것을 보장하는 "바른" 질서, "바른" 행동의 학습을 권장하는 동화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그 이야기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계관이 어린이에게서 싹트는 것을 억지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깨고 나와 새로움을 향하여 앞으로 나가는 행동을 장려하지 않는 메시지가 어린이에게 집중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깨고 나오는 행위는 이미 평안을 헤치는 것이지만 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간 덕목이며 차이코프스키를 예로 든 진실 추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의 끝없는 평안이 인간 가치의  순위라고 가르치고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 엄마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화성에 가고 누가 독재자를 무너뜨리겠는가?


많은 즐거운 그림책이 이런 평안을 추구하고 어린이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밀리언 셀러를 넘는 책을 만들어 낼 능력의 작가는 이미 그런 걱정을 했어야 한다.



*1 <마사, 말하는 개>는 뉴욕타임스가 정하는 1992년의 최고 일러스트레이션 상 (New York Times Best Illustrated Book Award)을 받았다

*2 출전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본 글의 내용과 사진 이미지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22 Jane. (삽화 Copyright 2022 msh.)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