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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Sep 18. 2022

그림책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그림책을 읽어본다 14: <연기가 자욱한 밤>


<Smoky Night>      Eve Bunting        David Diaz (Illustrations)   1994        Voyager Books


이브 번팅의 <연기가 자욱한 밤>은 9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LA 폭동)*을 다룬 그림책이다.  LA 폭동에 관한 그림책이란 말을 하는 순간 'LA 폭동에 관한 그림책이 있어요?'라는 반문을 듣게 된다. 어쨌든 폭동은 어린이나 그림책이란 주제와는 맞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브 번팅은 이 <연기가 자욱한 밤> 등 몇 그림책으로 미국에서 사회의 "불편한" 현상을 어린이들에게 설명하는 몇몇 안 되는 작가로 이름 나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그림책을 사용한 비평적 읽기 교육 지도서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연기가 자욱한 밤>에서 이브 번팅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제시하였는지 살펴보게 된다. 특히 LA 폭동이 일어난 지역에서 작은 사업체를 꾸리고 있던 한국 교민 사회에 폭동의 피해가 집중되었으므로 흑인과 백인 그리고 한국 교민의 입장이 어떻게 반영 혹은 소외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연기가 자욱한 밤>은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흑인 소년이 LA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어느 날 밤,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년과 그의 엄마, 그의 아파트 앞 길 건너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는 한국인 여인 미시즈 킴, 밖에서 몰려다니며 물건을 훔치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폭도들, 그리고 아파트 이웃 몇 명과 대피소 관리자가 등장하며, 또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소년의 고양이와 미시즈 킴의 고양이다.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개될 수 있다.

폭도, 약탈 수준의 절도, 그리고 방화의 정황은 엄마와 소년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한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표지에서부터 보이는 데이비드 디아즈의 삽화는 유화 페인팅, 콜라주 등의 기법으로 여러 가지 매체를 강렬하게 또 거칠게 사용하고 사물 표현에 모두 짙은 검은 테두리를 사용하면서 이야기의 살벌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결이 성긴 골판지, 깨어진 유리 조각, 사방에 쏟아진 시리얼과 쌀의 콜라주, 그리고 물감을 두껍게 짜 발라 거친 표면을 만들어낸 채색 방법 등, 무섭고 산란하고 폭력적인 감정을 촉발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소년의 정돈된 집안에서 시작된다. 차분한 보라색의 벽, 한쪽 벽에 창문이 있지만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진 이 작은 창으로는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트의 고층이다. "저 아래 멀리에서 폭도들의 소리가 들린다"라는 소년의 서술은 그림에 보태어 바깥의 무법의 폭동과의 거리감을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그 창 앞 테이블에 놓인 장식 화병은 밖의 폭도와의 구별, 혼돈과 평안의 대비를 결정적으로 선언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소년의 엄마가 밖의 폭동에 대해 아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으로 바깥 폭도들이 가게를 부수고 물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들의 삽화에 곁들여진다. 그중 한 장면은 한국인, 미시즈 김이 자기 가게에 난입한 폭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다.


'폭도들이 화가 나서 저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란 엄마의 설명에 곁들여 소년은 미시즈 김이 평소에 자신의 고양이에게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로 소리를 질러왔다고 서술하고 있다. 소년은 폭도들이 화가 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이 모자는 혹시 밤 중에 대피할 경우를 대비하여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든다. 침실 벽에는 꽃 그림 액자가 걸려 있고 따듯한 노란색 침구 속에 고양이까지 안고서 모자는 누워있다.  


완전한 구분이다.

그리고 분명한 편 가르기이며

그 속에 교묘한 책임 전가의 기미가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밖에서 폭동에 가담한 흑인과 안전한 곳에서 그것을 내다보며 평을 하는 흑인과 그 폭동 속에 휘말린 한국인과 그리고 이브 번팅, 그렇다 백인 작가가 있다.


1. 흑인 폭도-물건을 훔치고 방화를 하며 그동안 쌓인 분노를 풀어낸다.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2. 흑인 모자-평생 불법이나 폭력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사는 그룹이다. 아무렇게나 사는 흑인들을 딱하다고 말하는 그룹이다.


3. LA의 한국인-이국에서 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들의 조그만 사업체의 주 고객, 주변의 문화를 거부하고 무시하기까지 하며 자신들끼리만 산다.


4. 이브 번팅-폭동의 실질적인 최대 피해자 한국인 교민 사회와 실질적인 가해자인 흑인 폭도 그룹 간의 갈등 폭발로 LA 폭동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주장은?

그림책의 주 독자인 어린이들을 향한 메시지로 만들어 보면,

'사람이 저 흑인 모자 2번처럼 법을 지키며 바르게 살아야지, 1번 흑인처럼 마구 사는 사람들이나 3번 한국인과 같이 자신의 이웃을 무시하며 사는 무지한 인간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불행은 그래서 일어난 것이야.'  


차단과 편 가르기와 책임 전가가 모두 실려있다.

그룹 간의 차단은 매우 강력하여 이브 번팅이 대표하는 백인 그룹은 아예 이야기 속에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LA 폭동은 백인사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2번 흑인 그룹은 1번을 차단하며 3번을 꾸짖는다. 1번과 3번은 피해자이며 표면적으로 폭동의 양 주체이면서도 이 이야기에서 그들은 소외되어 있다.


이야기 후반부에 소년의 아파트에 불이 나고 주민들이 밤중에 대피소로 피해 가면서 그들은 미운털 박힌 미시즈 킴도 같이 "끼워" 주며 "바른 시민"임을 증명한다. 그들이 애완동물을 안고 들고 깨어진 유리와 쓰레기와 연기로 뒤덮인 거리를 한 줄로 질서 정연하게 걸어가는 삽화는 그 그룹을 통해 보여주는 무질서한 폭도들에 대한 차별과 거부의 신호다.


바른 인간은 질서를 지키고 모자라는 이웃도 품어 안으며 사람같이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브 번팅과 데이비드 디아즈의 가르침인 셈이다.  


이야기 마지막에 대피소에서 소년의 고양이와 미시즈 킴의 고양이가 친구가 된 모습을 보여주며 소년의 엄마가 미시즈 김에게 친구가 되자고 제안하는 부분까지 덧붙이면 이브 번팅이 보여주는 백인 사회의 교조적 훈시가 유치하다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연기가 자욱한 밤>은 전형적인 책임 전가의 이야기다.   

이 모든 폭력적인 사태는 백인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이야기이다.


힘을 가진 그룹(백인)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다른 그룹은 결코 승자가   없는 게임판을 벌릴   사회의 약자는 이길  없는 게임에 절망한다.  강자가 자기 시스템의 과오를 총체적으로 부인하는 사안이 표면에 떠오를 때 약자는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감에 휩싸여 다른 약자를 공격한다. 그것이 LA 폭동이다. 그럼에도 승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약자를 향해 가상의 모범적 약자(흑인 모자) 내세워 보이며 법을 지키면서 바른 삶을 사는 그들을 닮아야 한다고 훈계하고 있다. 위선과 책임 회피다.


<연기가 자욱한 > 사회의 "불편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그림책이라면 길거리의 폭도가 되어버린 흑인들은   "바른정신없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어야  것이며  속에는 치열한 자기반성이 포함되어야  것이다.

 

대신 이브 번팅은 이 이야기를 통해 LA 폭동을 사회적으로 잠시 불편한 현상으로 풀어주고 있다. 이웃을 배려하고 법을 지키며 바르게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예로 들며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으므로 따라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확인해준다, 잠시의 사회적 혼란과 불편은 걱정할 필요 없으니 법을 지키며 계속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이 그림책은 예상외의 관점에서 비판적 그림 읽기 교육의 좋은 교재가 된다. 이 이야기를 읽고서 아이들에게 그 창 앞에 놓인 화병 그림과 한 줄로 서서 대피소로 향하는 장면이 연출된 이유, 즉 누가(작가, 삽화가, 그리고 편집자) 무엇 때문에 이 장면들을 설정했는지 이야기를 시켜본다면 비판적 그림책 읽기(critical literacy)의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1992년 로스엔젤리스 지역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 사건으로 백인 시스템에 대한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동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지역 경찰과 사법체계의 흑인 경시가 직접 불씨가 되어 촉발되었다. 로스엔젤리스 중 남부 지역에서 흑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교민들이 운영하던 사업체에 약탈과 방화가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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