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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Aug 29. 2022

또 다른 10년도 지금까지 처럼..

한 가지 경험으로 10년 VS. 매년 다른 경험으로 10년

"한 가지 경험을 20년간 지속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매년 다른 경험으로 사는 20년을 추구하라." LinkdIn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가 발견한 이 문구 앞에서 딱 멈췄다. 글자 하나하나가 꿈틀거리고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개벽할 때의 서광이라고 할까? 고구마 10개를 물 없이 먹었을 때의 답답함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하는 한 모금의 사이다와도 같았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고 하던데 나 역시 내가 원하는 해석을 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서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라는 의미일 텐데 말이다. 그래도 시원했다. 학부 졸업 후 꽤 긴 기간 일을 했지만 산업분야나 업이 다른 여러 조직에서, 역할과 경험도 다양했던 것이 내 경력의 가장 큰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 실제로 헤드헌터나 채용 담당자들에게 그런 피드백을 들었다 - 매년 다른 경험을 하라니. 자신감이 고개를 살짝 든다.  


내 이력서를 관통하는 단어는 '다양'이다. 그렇다고 '맥락'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각 시기별로 사건은 달랐지만 결은 같았다. 개척 단계였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기초를 잡는 역할을 맡아왔다. 2000년대 초반 이제 막 시작한 '정부 초청 장학생'제도, KOTRA의 지사화 사업이 그랬다. NGO 단체에서 인재 양성의 중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세부 실행 계획을 만든 것도 같은 결이었다. 초기 개발 및 진단 과정에 합류했던 KRIVET의 K-CESA, 박사과정 중 Graduate Assistant로 일했던 Sustainability Institute에서도 초초초초창기 멤버였다. John. A Dutton e-Education Institute도 설립 초기였고, 현재 소속 회사도 2020년에 합병으로 설립되어 막 창립 2주년을 넘긴 스타트업이고 난 이곳에서 만 2년을 일했다.  


또 다른 키워드는 '도전'이다. 내가 안전하게 느끼는 분야가 아닌 일에 도전해서 성과를 낸 경험들이다. 예전 회사에서의 일이다. 2010년대에 이미 ESG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견줄 수준이었다. 그런데 경영진의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호흡기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던 2018년에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개발을 맡게 되었다. 생소한 분야에 그것도 떠밀려 들어갔지만 내 도전 본능은 통했고 열악한 지원에도 연말에 이러저러한 기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디 이 뿐이랴. 올해 2022년 7월에는 2020년부터 시작해 2년 6개월에 걸쳐 누적 500 시간 이상을 코칭해야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Professional Certifed Coach도 취득했다. 또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절대 필요한 워크숍 운영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사내 워크숍을 수차례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감각'을 키웠다. 또 최근 1년은 HRM으로의 역할 확장을 염두에 탐구하고 학습하고 있다. 글쓰기 훈련에 나를 집어넣어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면서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 등단에 성공하고 아마추어이지만 프로 작가를 꿈꾸며 열심히 고민하며 긁적이고 있다.   


이상과 꿈은 깨지 않아야 한다며, 꿈에 머물기를 애쓰고 비전에 혹해 열정 페이도 아깝지 않던 때에는 움직이는 것이 당연했다. 한 곳에서 끈기 있게 버티며 실익을 차곡차곡 쌓는 것보다 호기심과 순간의 열망에 혹해 진득하니 머물지 않았다. 개척과 도전 모두 중요한 맥락이고,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얻어낸 전리품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내 열정의 발자취들은, 그러나 그간의 구직시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숙련도가 낮아 보였을 수도, 또는 내로라하는 기업이 아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 줄기 희망은, 채용 시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 가지 경험을 20년 동안 지속하는 것보다, 매년 한 가지씩 20년간 다양한 경험이 더 가치 있다 말한다. 나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특히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지는 사회에서는 어떤 조직에든 잘 적응하고 상황 판단력과 문제해결력이 필수 역량이다. 그런데다 요즘 20, 30대는 이직이 대세이고 경력개발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력서가 '퀼트'인 이들이 많다. 인력 시장에서 물러나야 할 것 같은 40대 중반의 빠른 주기의 다양한 경력들로 채워진 이력서도 빛 볼 날이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감히 서슴지 않다니... 여전히 무모하다니, 역시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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