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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Aug 12. 2019

할머니의 떡볶이

추억 한 그릇

할머니뻘 되는 나이 든 분식집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무작정 떡볶이 1인분을 시켜놓고 내 시계는 1995년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아파트 단지를 계속 걸어 들어가면 복도식으로 길게 펼쳐진 집들 한가운데에 할머니의 집이 있었다.
힘든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의 시작과 함께 나는 2살 어린 남동생의 손을 잡고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집을 두어 정거장 남겨두고는 입안 가득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세숫대야만 한 커다란 냄비에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걸쭉한 국물 소리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통통하게 잘 익은 떡볶이 떡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동생과 나를 유혹했다.
할머니가 손이 얼마나 큰지, 고작 초등학생인 우리 남매와 사촌언니, 이렇게 셋이 먹을 양인데, 하루 반나절은 장사하고도 남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의 떡볶이를 만들어주셨다.

할머니는 말수가 적고 여장부 같았다.
언젠가 부모님의 방에서 무심코 꺼내 든 엄마의 일기장에 등장하던 심술궂은 시어머니였던 할머니의 모습, 혹은
집 나간 큰엄마를 대신해 사촌언니를 기르며 때로는 빗자루를 들고 호되게 언니를 매질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이런 따뜻하고 맛있는 떡볶이와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냥 순수하게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 엄마와 사촌언니에게 조금은 미안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에게 떡볶이를 만들어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지병이 있어 몸이 뚱뚱했던 할머니는 두툼한 손으로 양념 재료들을 툭툭 넣었는데, 그것은 내가 알던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던 1큰술, 1작은술의 그림이 아니었다.
고추장은 수저가 더 이상 담을 자리가 없을 만큼의 양으로,
설탕은 매운맛을 잡아줄 정도의 감칠맛을 살려서.

할머니의 계량법은 1큰술이나 100cc 같은 정확한 수치가 아니었음에도 매번 갈 때마다 똑같은 맛을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그 반나절을 장사하고도 남을 만큼의 떡볶이를 냄비 째 바닥에 놓고 둘러앉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는 배불러서 바닥에 뒹굴 엎어졌다. 그리고는 그 부른 배가 소화될 때까지 웃고 떠들었다.

할머니는 이제 백 살이 가까워졌다.
나는 내 나이가 한 살씩 커지는 것보다 이제는 더 이상 할머니의 떡볶이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서글퍼졌다.
제 아무리 떡볶이 맛집이라고 해도 할머니의 그 떡볶이 맛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갖은양념을 더해야 맛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요즘 떡볶이 말고, 별것 없음에도 입안 가득한 그 맛.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제 거동조차 불편해진 할머니를 가끔씩 만날 때마다 주름진 그 손에 슬쩍 돈 봉투를 쥐어드리고는 할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그 떡볶이 맛을 떠올리는 것뿐.


그리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할머니뻘 되는 분식집을 만나면
미련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나의 유년시절을 그리는 일.

문득 마주친 학교 앞 분식집에서 천 원어치의 컵떡볶이를 사들고는, 뜨거운 한 컵의 추억을 음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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