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8
18화 그녀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그녀는 그가 차근하게 대출을 갚으며 본인의 자산을 모으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연봉도 올랐겠다 대출도 갚고 돈도 모으고 그 본인 스스로도 매우 좋은 일이 아닌가라며. 그리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급발진?! 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그가 큰 맘먹고 예약했던 유명 호텔이었다. 그녀는 그가 연말을 좀 분위기 내며 보내고 싶었구나 라며 간만의 호캉스에 그저 들떠있기만 했었다. 그날 밤, 막 씻고 나온 그녀에게 그는 느닷없이 커플링을 꺼내어 들고 그녀에게 프러포즈했다. 그녀가 씻으러 들어간 새에 급하게 초며 케이크며 꽃다발까지 급하게 준비하느라 그랬는지 긴장해서 그랬는지 그의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그녀는 당황했다. 그가 말했다.
사실 그녀가 그에게 연인으로든 친구로든 갈 수 있다고 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당시 상황이 막 제대하고 돈 번지도 몇 년 안되던 때라 이미 승진하고 자리 잡고 일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고.
그런 그녀가 그에게 학자금이니 대출 등을 신경 쓰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을 보니 이번엔 그가 나서서 그의 결연한 의지?! 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이다.
그녀는 울컥했다. 그가 그녀의 마음자리에 '믿음'이란 단어를 새겨 넣는 순간이었다. 왠지 눈물이 났다. 지금 이 남자가 나한테 올인한 거구나. 누가 그랬던가. 남자가 가져오는 꽃다발에 감동하는 게 아니라 부끄럽고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가져오는 그 마음에 감동하는 거라고. 그의 프러포즈가 그랬다. 긴장했지만 솔직하게 진심을 다한 그의 마음이 그녀의 오랜 방어벽을 훅 뚫고 들어왔다.
사실 재이는 C와 2년 넘게 교제하고 서로 좋아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결혼은 여전히 확신이 없었었다. C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생활에 스며들 듯 어느새 한편을 차지했지만 그가 그녀의 인생을 동반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확신은 대체 누가 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녀가 그의 학자금 대출 얘기를 꺼낸건 물론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기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만약 헤어지더라도) 그게 C본인을 위해서도 좋은일이니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그녀와 그가 계속 사귀어도 헤어져도 그에겐 결국 좋은 일이라며.
그런 그녀의 그 마음 뒤에는 이 전과 또 똑같은 물음들이 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연애의 끝은 항상 결혼이지? 결혼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연애만 하면 안 되나? 왜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서로를 구속? 해야만 하는 걸까?"
재이의 원룸 주변에 사는 이웃들은 이제 그들을 거의 주말 신혼부부쯤으로 대하고 있었고 그들도 굳이 거기에 해명?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웃들의 눈빛 때문에, 주변에서 대충 나이가 찼다?라는 압박 때문에, 안 하면 이상해서 등 떠밀려 하는 결혼은 아니다 싶었다.
그 당시 그녀가 보기에 결혼은, 하게 되면 훨씬 귀찮아지는 것뿐이었다. 부모지만 부모 같지 않은 또 다른 부모인 시댁이 생기고 양가 가족들의 오지랖이 생기며 출산과 육아 등 부부의 생애주기를 스스로 결정할 수없게 만드는 다양한 간섭들에 시달릴게 뻔했다. 그 불구덩이를 왜 굳이 자원해서 들어가야 하냐고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그가 프러포즈했다. 학자금 대출이나 먼저 갚으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사귄 지 2년이나 지난 시점에 갑자기 커플링을 들이밀면서. 핸드폰 고리 내밀면서 사귀자고 할 때 알아봤다. 이 남자, 여자에게 하는 선물 센스는 없다는 거.
그렇지만 C만큼 그녀를 그녀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서로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거, 그리고 진심을 전하는거. 그게 삶의 동반자의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커플링을 가만히 응시하다 그에게 말했다.
"근데 어떡하지. 나 이거 못 끼고 다닐 것 같은데.."
그의 눈이 동그래진다. 방금까지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의 예상치 못했던 발언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의 흔들리는 눈이'거절이야? 나 지금 차인 거?? 하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런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말한다.
"지금 이 반지를 내가 끼고 다니면 날 모르는 이들은 내가 결혼했다고 생각할 거고 날 아는 이들은 이제 곧 결혼하냐고 물어볼 텐데. 우리 나이가 이제 대학생들처럼 그저 순수한 커플링으로 봐줄 나이는 아니잖아...."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쟈기 마음은 접수했어. 우리 이제 진짜 진지하게 결혼 준비하자. 그러니까 이 선물, 내가 하고 다닐 수 있는 걸로 바꿔줘요"
그가 만족한 얼굴로 웃으며 그녀를 안는다. 응, 바꿔올게요.. 하는 그의 말줄임표 안에 근데 뭘로 바꾸지?라는 말이 생략되어있다. 그녀가 결국 그에게 "작고 반짝이는 걸로, 손 말고 목이나 귀에 걸 수 있는 걸로 바꿔와요. 내가 브랜드도 알려줄게"라고 그녀가 말하고 나서야 그의 표정이 활짝 핀다. 아무튼 전형적인 남중에 남고에 공대 남자다. 코딩을 잘해줘야 한다며 그녀가 너스레를 떤다. 두고두고 회자될 프러포즈라며.
그녀는 항상 연애라는 관계에 한 발 담가놓고 한 발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연애가 결혼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그 관계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고, 헤어짐이 쉽지 읺다. 그때부터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 그저 '연인'이 아닌 삶의 동반자가 되고, 배우자가 된다. 관계에 법적 구속력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게 하고 싶을 땐 아마도 '한 사람'에게 올인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 관계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싶을 때인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씌워야만 안정적이 되는 거라면 그게 사랑이냐?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근데 그건 순서가 뒤바뀌었다. 사랑이 깊어지고 '한 사람'과 인생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순간 더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거다.
그게 어떤 이에게는 집을 사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혼인신고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장 합법적으로 사회에서 보장해놓은 제도가 결혼이란 제도 일 뿐이다.
재이는 여전히 결혼 예찬론자는 아니다. 세상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어야 하고 마치 모범답안처럼 인생의 이벤트들을 순서대로 밟는 게 행복의 정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재이가 말하는 결혼의 딱 좋은 시점은 '본인이 혼자 살아도 훌륭히 본인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잘 살 수 있을 때, 사랑하는 한 사람이 인생이 더해진다면 훨씬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이다. 반드시 혼자 살아도 훌륭히 살 수 있을 때여야만 한다. 우리 이제 더 이상 밖에서, 남에게서 내 인생을 찾지 말자.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건 본인 스스로 밖에 없다는 거, 그녀의 사랑의 제2원칙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그대의 운명의 상대인지 그 확신은 그 누구도 답을 줄 수없다. 그건 본인의 결심만이 존재할 뿐, 세상 가장 용한 점쟁이도 알 수없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정했다. '이번 인생은 C와 함께한다'라고. 그의 마음을 다한 프러포즈가 결국 그녀의 마음의 가장 깊숙한 벽을 허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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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