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7
17화 연애와 결혼 사이
C와의 연애가 2년을 넘어가고 그가 그녀의 원룸에서 머물렀다 가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의 물건이 하나둘씩 그녀의 방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와 그녀도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며 서로의 집에 인사하러 갈 날을 슬슬 생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녀가 주말을 맞아 본가에 들렀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엄마와 한창 티브이를 보다 그녀의 엄마가 넌지시 재이에게 물었다.
"너 00하고 진짜 진지하게 만나는 거야?" (C가 고등학교때부터 친구라 엄마는 C의 이름을 곧 잘 불렀다)
" 난 항상 진지했는데?!"
"진지하긴? 예전엔 남자친구 맨날 없다 그러거나 만나다 말다 하더니?이번엔 좀 오래간다?"
근데 그건 왜 묻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녀에게 엄마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한마디 한다.
"엄마 아직 걔한테 인사받을 준비 안됐어. 그리고 너 걔 계속 만날 거면 선 좀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
ㅇㅇ?! 갑자기?! 선?!?!?! 그녀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동동 뜬다. 그녀의 엄마가 이렇게 정색을 하며 뭐라고 할 때는 그녀가 수능 보고 와서는 재수한다며 엄마 앞에서 목놓아 울었던 그날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수능이 끝나고 서럽게 울며 재수하게 해달라고 우는 재이 앞에서 엄마는 '그만하면 넌 최선을 다했다'는 팩트 폭행을 하며 그녀를 주저앉혔었다. 물론 줄줄이 두 명이나 있는 그녀의 동생들 앞에서 재수는 지원이 힘든 상황이었을 거란 걸 깨달은 건 먼 이후의 일이긴 했지만. 대체 엄마는 이번엔 무슨 속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엄마가 이어 말한다.
"하다못해 옷 한 벌을 살 때도 한집 옷만 보고 결정하지 않는 법이야. 아무리 맘에 들어도 이 집 저 집 다 보고 그러고 나서도 첫 집 그 옷이 맘에 들면 그때 가서 사도 사잖아" 란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 엄마가 언제부터 그녀의 연애에 오지랖을 부렸었나 싶다. 엄마에게 발끈하며 한마디 한다.
"이 상황이랑 그 상황이랑 같아? 그리고 엄마 나보고 지금 남자 친구 두고 선 보라는 거야? 아니,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그 상황이라고 해도, 처음 보고 마음에 든 옷 사야지 이 집 저 집 다 돌아봤자 한번 꽂히면 다른 옷 눈에 안 들어오는 거 엄마도 알잖아. 그 사이에 처음 본 옷 누가 채가면 어쩌려고?"
"허이고, 말대꾸하는 거 봐라~ 그래 니가 걔가 좋긴 좋구나? 아니, 까놓고 말해 네가 결혼을 했어 뭘 했어? 엄마가 누가 걔 내버려두고 바람피우래? 다른 사람도 한번 만나보고 얘기해라~뭐 이런 거지! 아무튼 엄마는 너 선보고 다른 사람 보지도 않고 걔 데려올 거면 안 볼 거니까 그렇게 알아!"
생각보다 강경한 엄마의 태도에 그녀가 움찔하며 꼬리를 내린다. "아니 누가 당장 결혼이라도 한대? 왜 오버야 엄마는~! 아, 안 만나~~! 다른 사람도 안 만날 거고 C하고 엄마한테 인사하러도 안 올거니까 걱정을 하덜 마슈!" 퉁퉁 불은 볼로 휙 말을 쏘아대곤 그녀가 돌아 앉는다.
재이 사전에 엄마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땐 아무것도 안 통한다. 다만 선이라니, 그 선으로 만난 다른 사람은 무슨 죄인가.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를 설득할 시간이.라고 그녀는 입술을 꾸욱 깨문다. 항상 그녀의 인생에 강력한 우군이었던 엄마가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친구로 지낼 때는 전혀 상관 안 하던 C의 학원 강사라는 직업이, 엄마는 딸이 진지하게 만나는 남자라 하니 그게 불안정해 보여 싫은 것 같았다.
엄마는 남자가 그렇게 없냐며, 재이에게 맞선 주선으로 유명한 업체 이름을 대며 니 조건이면 뒤에 '사'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면서 그녀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아빠가 퇴직하시기 전에 빨리 만나보라 했다며 그 업체 매니저의 말을 전해줬다. 대체 그 매니저란 작자는 어떻게 엄마 연락처를 알아서 또 그런 감언이설로 엄마를 꼬드겨 낸 걸까.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녀의 꼬리표에 매겨진 가격은 결혼 업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빋게되는 걸까 라고 생각하니 그녀는 괜히 등골이 다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걸림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갓 서른을 넘긴 그들이, 일반적인 대한민국 군필자인 그 나이대의 남자들은 특히, 돈 번지 얼마나 되었겠는가. 큰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긴 했지만 C에게 물어보니 그에겐 학자금 대출이 아직 남아있었고 그마저도 대출 이자도 통장에서 자동 이체로 빠져나가서 대출이자가 몇 프로 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버는 만큼 쓰고, 이자만 내고 있었지 원금 갚을 생각 자체를 별로 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 아팠다. 괴리가, 너무 컸다. 엄마에게 이 상태로 C를 데리고 인사할 순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당장 학자금 대출 금리를 알아보고 신용등급 확인을 한 후 저금리 대출로 갈아 탈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과, 최대한 빠르게 원리금을 갚을 것을 그에게 요청했다. 재이는 그들 커플이 플러스에서 시작하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제로에서 시작할 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가늘게 떨린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그녀가 그런 종류의 말을 했을 때의 남자들의 반응을 떠올린다.
' 드세다. 잘난척한다. 아가씨, 여자는 자고로 백치미가 있어야 해요. 그렇게 생활력 강한 여자는 남편 사랑을 못받아~, 할줄 알아도 할줄 모른다 해야한다니까? 네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왜 결혼하자할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갑자기 잔소리야. 넌 결혼상대로 매력이 없어. 너처럼 니 커리어에 욕심 있는 애가 나중에 집에서 살림하고 애 낳고 싶어 하겠어? '
재이는 사실 그런 말을 했다가 C도 그녀를 부담스러워할까 봐 두렵다. 개인의 경제력?! 은 각자 알아서 하지 싶고 가능하면 굳이 불편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결혼은 다른 얘기다. 그건 서로의 살림을 합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인 것이다. 아니, 그전에 일단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면서 모은 돈은 고사하고 빚을 들고 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을 듣는 그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일 당장 신협에 가서 학자금 대출 이율 등을 알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그의 그런 반응이 고마웠다. 그녀의 말 뜻 그대로 그녀의 뜻을 받아준 것만 해도, 이 상황을 이해해준 것이라 여겼다. 그대로 그가 학자금 대출도 갚고, 조용히 그녀 엄마 등잔 밑에서 시간을 좀 끌다보면 그렇게 시간은 가고 그도 그녀도 좀 더 저축할 시간을 갖게 되겠지. 돈도, 시간도.모두.
그렇게 그도 그녀처럼 생각하고 착실히 빚을 갚으며 지낼 시간을 벌었다고, 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인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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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