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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n 24. 202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6

16화 그가 실직했다.

항상 문제를 피해 돌아가면 그 인생의 문제는 다른 형태로, 그러나 같은 유형으로 또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마치 이 인생의 난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듯이.


재이의 달달함으로 채운 분홍색 풍선이 다 부풀기도 전에, C가 실직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녀의 과거의 이별의 트리거가 갑자기 검은 먹구름처럼 겹쳐 왔다. 와 이전부터 알고 있던 학원 원장님이 같이 학원을 운영하자고 C를 키워주겠다며 스카우트를 해갔었지만, 둘 다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던 탓에, 생각 외로 학원의 운영이 힘들어지자 더 이상 같은 과목을 중복으로 가르치는 전임 강사가 두 명이 있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학원 원장인 원장님 본인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졸지에 C가 더 이상 그 학원에 있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C는 일을 그만둘지 말지에 대해  그녀에게 어찌하는 것이 좋겠냐고 먼저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그에게 항상 새로운 생각의 관점을 제공해준다나 뭐라나.  그녀와 C는 이런저런 진지한 얘기 끝에 C를 스카우트했던 원장님에게 배신감 느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첫 의도가 C를 향한 호의에서 시작되었고 학원 상황이 안 좋은데  굳이 더 있는다고 해서 좋은 결말을 볼 것 같지도 않으니 좋게 좋게 나오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C가 기존의 학원을 그만두고 나와 새로운 학원 면접을 보는 날, 마침 주말이어서 그들은 면접 후에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더랬다. 그날 그녀는 미생의 장그래가 TV에서 바둑 두다 걸어 나온 줄 알았다. 그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처음 회사 출근한다고 입고나왔던, 아빠 양복을 훔쳐 입고 나온 것 같은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웃긴 건 마치 신입사원이 양복을 처음 입어 어색한 마냥 씩 웃는 그의 모습이 구리구리한 양복 속에서도 귀엽고 앳되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젠 뭐, 운동하고 나온 시금털털 땀냄새도 좋다고 하게 생겼다.


평소엔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캐주얼하게 면바지에 폴로셔츠 등을 입고 다녀서 몰랐는데 면접 본다고 나름 신경 쓰고 나온 정장이 영 어벙 벙하니 어색했다. 이래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근처 양복점에서(데이트도 마침 신사동이었다) 얼른 한벌을 맞춰주었다. 통 크게 면접 붙길 바라는 합격기원 선물이라며. 그리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듯 그가 새 양복을 입고 시강(시범강의)을 한 목동과 신금호의 두 학원에서 나란히 합격 통보가 왔고 그의 월급은 거의 1.3배가 상승했다. 역시 옷이 날개다 그녀의 눈썰미가 대단하다 라며 칭찬하는 그의 말에 옷걸이가 최고지라는 말로 그녀가 회답한다.


그는 그녀가 복덩이라며,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였고 그녀와 시귀고 나서 본인의 인생이 한 층 더 좋아지고 즐거워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 그건 그가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녀가 인생을 간섭하는 소리쟁이 마누라에서 행운의 복덩이가 된 건 그녀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다른 것이다. C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만약 B가 면접 본다고 저렇게 입고 왔었어도 그녀는 똑같이 양복을 선물했을 것이다.  B가 과연 면접이 있다고 그녀에게 말을 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이 왠지 쓰다. 그건 단순한 성격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이혼 법정에서 장 흔한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애초에 서로 끌렸던 이유는 그 '다른 성격'에 매력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MBTI(성격유형검사) 설문조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실제 부부들이 절반 정도 성격 유형이 겹친다고 한다. (MBTI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그중 두 글자가 겹치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사람들은 본인과 거의 동일한 성격유형의 사람에게는 매력을 잘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인의 단점이 고스란히 상대방에게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완전 전혀 다른 정반대의 사람에게도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상대방과 본인의 공통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은 절반 정도는 닮고, 절반 정도는 다른 상대를 만나 같이 사는 부부가 가장 보편적이란 뜻이니 성격차이란 이혼사유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성격차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으로 더 풍요롭고 사랑하며 서로 이해하고 닮아가며 잘 살고 있는 부부도 있다는 뜻이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부부들은 과연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걸까. 아니면 태도 차이로 헤어지는 걸까. 사실 알고 보면 성격차이가 아닌 사람을 대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갈등을 겪는 게 아닐까.


재이는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인생의 고난과 난제를 함께해보는 행운이 따르길 기원한다. 결혼 전에, 서로가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을 때,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체력을 가늠하기 힘들 때, 오히려 함께 힘든 인생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 보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제 그의 실직이, 퇴사가 두렵지가 않다. 그 만의 행운의 상징인 그녀가 옆에 있을 거니까. 인생의 풍랑을 함께 넘어선 그들은 뭔가 서로의 사이가 좀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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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 아직 안끝났어요 ㅎㅎ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격리, 인생은 예상치 못한 풍랑이 많지만, 생각보다 감사한 일도많다. 무서웠던 14일의 호텔 격리는 상해 한인회의 도움으로 보다 따뜻해졌고 가족들은 또 조금 더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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