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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n 21. 202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5

15화 그가 고백하는 방법

재이는 결국 얄미운 그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그리고 겉으론 자신만만한 듯 도도한 듯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마음은 친구로 되돌아가던, 연인으로 나아가던 두 길 모두 열려있다고. 지금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으니, 어느 길로 그녀와 같이 동행할지는 C에게 정하라고 말이다.


재이가 배운 사랑의 제1원칙, 상호작용의 룰이다. 서로의 마음이 비등비등할수록 그 연애는 오래간다. 어차피 그녀 혼자 짝사랑해봐야 그 연애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그리고 이만큼 그녀가 마음을 밝혔으니 이번엔 그가 움직여줘야만 한다. 연애는 둘이 하는 거니까.


그런 그녀의 속을 이틀인가 까맣게 재가되도록 태운 그는 당시 유행하던 혈관고 인형(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웹툰이다)을 선물하며 대답했다. 되돌아가기 싫다고, 어떻게 될지 모르더라도 앞으로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앞으로는 서로 '존댓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지금 핸드폰 고리 인형 선물하면서 사귀자고 하는 거지 이 남자?라고 생각하다가 그녀는 더 어이가 없다. 뭐라고? 서로 이름 부르며 야 너 했던 동갑 친구사이에 서로 존댓말이라고 라? 그녀의 황당한 표정을 보며 그가 한마디 한다.


" 나중에 우리가 싸우더라도 야 너 어쩌고 하면서 반말로 하다 보면 말 더 험악 해질 거 아냐. 좀 어색하더라도 서로 말을 조심해서 존대하면 더 좋을 거 같아. 뭐, 정말 존대하자는 건 아니고 섞어서라도 하도록 노력해보자"


헐... 갈수록 반전이다. 이런 면이 있었나? 뽀얗게 숨어있었던 속살만큼이나 그가 낯설다. 분명 당차게 사귀자!? 엇비슷한 선전포고를 한건 그녀 같은데 그의 대답에 그녀는 지금 2 연타 맞고 삼진아웃 직전이다.


그런데도 재이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선물과 대답인데 예측하지 못해서?! 더 맘에 든다.  존댓말이라니, 그건 그가 우리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뜻이다. 미래에 대해 상상해보고 서로 투닥거리는 것까지 생각했단 뜻이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인형은 그가 얼마나 연애의 초보인지에 대한 반증이다.(아니면 숨은 재야의 고수이거나) 여보세요. 누가 여자랑 사귀자 그러면서 이런 허름한 밥집에서 핸드폰 열쇠고리를 주며 얘기하냐고... ㅉㅉ그녀니까 받아 준다이 거지.. 하며 자꾸 웃음이 실실 샌다. 낯선 그가 웃기다. 그리고 지금 이러고 실실거리는 그녀 본인은 더 웃기다. 마치 C가 그녀만 알고 있는 숨은 원석인 것 같은 걸 보니 이런,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다. 근데 자꾸 웃음이 나는 걸 어쩌라고.


다음날 C는 그녀의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씨버(cyber) 러버'로 등극했다. 매일매일 밤 11시 넘도록 야근하느라 회사 근처로 자취방까지 구한 그녀였다. B와 이별한 뒤로 1년 넘게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힌 그녀가 갑자기 어느 날 O형 남자 핸드폰 고리를 달고 왔기 때문이다.  당최 어디서 연애할 시간이 났냐며, 맨날 밤마다 그리 야근을 하면서 달달한 전화 한 통 하는걸 못 봤는데 분명 자작극?이라는 둥, 남자 친구가 휴먼인데 이럴 수가 없다며?!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낸 허구 인물이라며 쑤군쑤군 대었다.

그도 그럴 것이 C는 학원강사였는데 주로 근무시간이 평일 밤 11시까지라 주로 그들은 주말만 만났고, 심지어 C가 일요일도 학원 강의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주말 중 하루는 데이트를, 하루는 푹 쉴 수가 있었다. 만나는 그 일주일의 하루는 세상 달달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기만도 부족한 시간에 싸울 시간이 어디 있냐며.


그녀는 분홍색 풍선처럼 부풀어있었다. 그의 한걸음에 마냥 즐거운 그녀의 마음이 저만치 구만리를 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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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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