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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n 17. 202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4

14화 친구와 연인 사이

재이가 '우리 다 잊고 다시 좋은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이 목 끝에 걸린지도 세 번의 주말이 지났다. 그 세 번의 주말을 넘겨 한 달이 될 때까지  그들은 매주 주말 최신 개봉한 각종 영화를 보고 유명 맛집을 찍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다녔다.  쿨하게 사고 친 거 다 잊고 걍 친구로 지내면 될 것을? 그녀가 그 말을 꺼내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 데는 그녀의 속사정이 있다.

 

재이의 머릿속 시나리오 1. 만약 그녀가 그에게 친구로 지내자 그러면 그의 성격상 뭐 그래~ 쿨하게 받긴 하겠지만 그게 재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다. 왜냐고? 사고 전에는 1년에 한두 번이나 만날까 말까 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친구들과 같이 보거나 주말에 본가에 갔을 때  본가에 가깝게 살고 있는 그를 불러내 가끔 술이나 한잔하고 왁자지껄 떠들다가 헤어지는 게 다였다.  근데 지금의 그들은 어떤가.

그 사고 이후 그 누구도 먼저 스킨십을 하지 않았지만, 자꾸 서로 스치는 손끝이 예전같이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그녀만 그런 걸까?) 마치 친구인양 서로 행동하고 있지만 다니는 코스들은 영락없는 데이트 코스였다. 손 안 잡고 마치 중년 권태기 부부처럼? 서로 약간 떨어져 무심한 듯 걸어 다니지만 여기서 팔짱만 끼면 누가 봐도 연인 사이인 것 같다. 문제는 그녀 본인이 지금 요 말랑말랑한 정의되지 않은 관계가 답답하지만 동시에 이전의 명확했던 친구사이 그 시절로 관계로 확 돌려버리고 싶지도 않다는 데에 있다. 친구로 돌아가는 길은 쉽지만 그러고 나서 정말 이전처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는 게 그녀는 싫다. 그리고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이렇게 누가 봐도 데이트 같은 짓을 하고 다니면서 말만 친구? 가 되는 건 그녀 성격에 더 안 맞았다.


시나리오 2. 그래서 만약 그녀가 그에게 연인으로 사귀자!라고 했다가 차이면? 오랜 남사친인 C를 잃게 될 것이다. 그녀 본인도 차이면 쪽팔리기도 하거니와 만약 C가 그녀를 친구로만 생각하는데 술김에 사고 쳤으니 그녀를 책임져라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그런 관계? 재이 입장에서도 줘도 안 받을? 그런 관계다. 누가 누굴 책임진단 말인가. 그녀만 좋아하는 짝사랑 같은 연애? 그녀 사전엔 없는 얘기다.


아니 그럼 뭐야 말하다 보니 결국 C를 좋아한단 거잖아! 재이의 마음이 소리친다. 고백해! 고백하라고~!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가 싫은 거잖아! 그녀의 가슴이 그녀를 재촉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성이 그녀를 강하게 다시 붙잡는다. 1년 남짓 솔로로 지냈다고 혹시 연애 금단증상에 요 말캉말캉한 연애 감정 자체가 그리워 그를 덥석 잡고 싶은 게 아니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괜히 그가 아닌 이 요 연애놀이? 가 좋은 것이 아니냐고. 이제 정말 본인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시작하는 연애가 아니냐고. 그녀 자체로 온전한 그런 사랑을 할 준비가 되었냐고. 왜 이렇게 이번엔 시작이 힘든 건지 모르겠다. 아직 그녀는.


 그 어떤 말도 선뜻 안 나온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도, C가 좋으니 사귀자는 말도. 그와 연인이 될 수 있을 것인지도, 그녀 자신은 솔로탈출을 할 만큼 단단한 본인이 된 것인지 그녀는 그 아무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괜스레 C가 얄밉다.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확 이끌어서 C가 "나랑 사귀자!"라고 강하게 말해주었으면 싶다. 그러는 그녀의 마음이 무색하게 그는 그 사고 이후 아무 말이 없다. 다만 그녀에게 좀 다정해졌고, 그녀와 약속이 잦아졌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엔 짤 없이? 더치페이였던 그였는데 이젠 그녀에게 밥을 쏘고 있다. 재이의 연애 사전에 남자의 이런 행동들은 '그린라이트'의 정석이긴 하지만 오히려 아무 관계가 아니었던  이전의 연인들에겐 오히려 쉽게 연애를 시작했던 그녀였음에도 C의 행동은 이게 친구의 연장선상인지, 그녀가 오버하는 건지, 그도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는 건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인 걸까. 사귀자고 했다가 그녀를 잃을까 봐 망설이고 있는 걸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왠지 모르게 그가 야속하다. 그래도 남자가 이럴 때는 좀 한 발 나서 줬으면 싶다.

 '이럴 때만 남자가 먼저라지. 평소엔 오빠가~남자가~여자가 어쩌고 하는 거 질색팔색 하면서' 그녀가 자조 섞인 웃음을 피식-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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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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