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의 조건 13
13화 사고 친 다음날
그렇게 C와 사고 친 다음날 술이 깬 재이의 머릿속이 분주하다.
'악~~ 미쳤어 뭔 짓을 한 거야! 뭐라고 그러지 어떻게 하지? 언제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뭐라고 말을 해야 되지? 어색해 죽겠네 ㅠㅠ 내가 정신이 나갔지 이렇게 친구 하나를 잃는구나?! 아니 얜 왜 일어나지도 않아. 왤케 자연스러워? 한두 번 해본 솜씨?! 가 아닌 거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옷이나 입자. 옷 입고 도망가야 되나? 아 쪽팔려 이게 무슨 일이야 ㅠㅠ '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아, 나 지금 화장 정말 떡져서 얼굴이 ㅠㅠ'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이불속으로 황급히 숨는다. 그런 그녀 눈에 그간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의 팔뚝과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피부가 까만 편인 그의 속살이 생각보다 뽀얗다. 옷 안 입은 그를 봐본 적이 있을 턱이 있나. '아.. 진퇴양난이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하지. 근데 생각보다? 팔뚝이 단단하네.. 만져보고 싶.. 아니 지금 뭐라는 거야'
그렇게 이불속에서 헤매는 그녀에게 그가 말한다.
"나 속 부대 껴.. 해장하러 가자"
" 어, 어! 나 거기 알아. 우리 예전에 술 먹고 갔던 뼈다귀 해장국집 말하는 거지? 거기 맛있더라"
웃긴다. 뭐 자판기처럼 그녀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온다. 그 해장국집은 또 어떻게 바로 딱 생각이 나냐... 근데 그가 밥 먹으러 가자 그러니 재이는 갑자기 배가 고프다. 그래, 일단 사고 친 건 친 거고 밥이나 먹자 싶다. 근데 이렇게 자연스러워도 되는 거니? 이래도 되는 거니?! 점점 C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가벼운 남자였나 싶다.(아니 그녀 본인은 같이 사고 안쳤냐고, 참 사람이 이렇게 사고가 주관적?이다)
해장국을 먹으면서 그녀가 뼈를 우물우물한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언제부터 그렇게 그 앞에서 외모를 신경 썼나 싶다. 잠깐 사고 쳐서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본데 사실 C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와 보던 오랜 남사친이다. 재이가 스머프 똘똘이 안경 같은 3단 압축 안경을 쓰고 빨간 뾰루지가 나던 민낯의 시절을 함께해 온 그가 그녀가 화장을 했건 머리를 잘랐건 살이 쪘던 살이 빠졌던 신경을 쓰겠냔 말이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을? 자라면서 이미 다 봐오셨기도 하고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이것저것 다 아는 친구사이라도 이건 아니잖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해장국에 밥을 말고 있는데 그가 또 말한다.
"어제 말했던 그 픽사에서 나온 영화 2탄 개봉했더라. 우리 그거 1편 재작년인가 본 거 있잖아"
"아 진짜? 아 나 그거 정말 보고 싶은데! 대박, 영화관 간지 진짜 오래됐네 그러고 보니"
"그래? 그럼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영화 보러 가자. 시간 돼?"
"어? 어 그래. 그러자"
그녀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뭔가 아까부터 자꾸 끌려가는 기분이다. '뭐냐 얜..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 내일 또 보쟤.. 지랑 내랑 언제부터 그렇게 자주 봤다고..' 그녀는 약간 어이가 없다. 근데 완전 그녀의 취향인 그 영화가 꼭 보고 싶긴 하다. 그리고 뭐 딴 거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봐요. 딴 거 뭐? 응?) 영화 보자는데 그 앞에서 정색 때리는 것도 이상하잖아.
다음 날, 영화관에서 그들은 너무나도 태평하게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만났다. 그리고 달콤한 맛과 어니언 맛 반반으로 큰 팝콘을 시켰다. 재이는 너무 신이 났다. 역쉬 오래된 친구 인증하듯 이 친구는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래간만에 하는 데이트? 같지 않은 데이트? 에 엔도르핀이 나오는 것만 같다. 영화 끝나고 조잘조잘 그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그녀는 너무 편하고 즐겁고 좋다. 이런 편하고 익숙한 오래된 친구관계를 단 한 번의 사고로 잃고 싶지 않다. 그냥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 ' 우리 그냥 이렇게 계속 편한 친구 하면 안 되니?'라는 말이 그녀의 목 끝까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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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