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너무 젊지 않은, 그리고 쉬기엔 너무 늙지도 못한
2020년 초여름의 중간에 그런 글을 남겼었더라고. 나조차 까마득한 브런치에 남긴 내 첫 글.
아마 브런치에서 내줬던 주제였던 것 같아. '두려움' 에 대한 글.
(브런치 첫 글: 두려움의 종류에 대하여 )
그리고 그 당시 한창 외국계에서 일했던 나에게 '영어' 로 일한다는 것, 그리고 '중국어'로, 다른나라의 언어로 일한다는 것이 크게 두려움으로 작용했었던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런말을 했었더라. 그 두려움의 끝이 성장과 맞닿아있다면, 그건 두려워도 도전해봐야하는 거고. 그 두려움의 끝이 결론 없는 되돌이표로 온다면, 과감하게 그 두려움은 버리라고 말이야.
참 기특하지. 과거의 나에게 좀 등을 토닥여주고 싶네. 그런 생각도 하고 대견하다고.
그래서 내가 브런치를 좋아하나봐. 여기는 글을 좋아하고, 읽기를 좋아하고, 활자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거든. 근데 또 그렇게까지 철학적으로 깊지 않아도 되고, 가볍게 그렇게 일상의 에세이를 서로 공감해주고 즐길 수 있어서 말이지. SNS랑은 거리가 먼 나도,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의 파편들을 남기게 된단 말이야. 이런, 또 이야기가 딴 데로 새버렸네.
다시 언어로 돌아가자면 말이야. 그 후에 나는 중국에서 3년을 보내면서 중국어 자격증 최고 급수를 땄고, 글로벌한 미국, 유럽의 동료들과 또 3년정도 일을 했지. (혹시 디테일에 민감한 누군가 총 5년기간인데 왜 6년의 경력이냐고 집어낸다면, 중간에 좀 겹치게 멀티로 일을 해서 기간이 그렇게 되네.) 영어든 중국어든 이제는 자격증이 별로 의미가 없을 정도로 소통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언어에 대한 목마름이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야. 아직도 제 2외국어이기때문에 항상 부족하고 그 언어의 원어민들 보다 노력해야 하고 배워야 하지. 그렇지만 더이상 그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진 것 같아. 그냥 부딪치며 일하다보니, 이젠 어느순간 익숙해진거지.
내가 이 얘기를 했었던가. 2022년에 나는 한참 일본을 갈지, 한국을 갈지 망설였고,(글 중간에 갑자기 시작된 급 일상얘기 : 재미의 발견 4 ) 결국 가족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판단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돌연, 갑자기 때이른 늦가을에 폭설이 내리듯, 2025년 초, 회사를 나왔지. 나의 건강, 남편의 일, 그리고 부서의 해체와 뭐 여러가지 이유로 말이야. 그리고 벌써 반년도 더 지난 8월이 되었네.
지난 반년간 건강도 좀 회복되고, 남편의 일도 좀 궤도에 올랐고, 아이도 이제 자리가 잡혔지. 처음엔 대학 졸업하고 17년간 직장인으로 살았던 내게 집에 있는 일상이 너무 낯설고 적막했는데, 소소한 일상과 즐거움이 또 그 자리를 꿰차더라고. 그렇게 나만을 위한 시간도 생기고 자연을 느끼고 내 몸을 돌아보고 여유가 생기다 보니까 다시 회사라는 공간으로 돌아가기 싫더라. 성장에는 항상 동반되는 근육통, 소모되는 체력, 고갈된 감정들. 이성과 효율과 생산성이 점철되었던 나의 직장인 시절. 이제 더이상 20대, 30대처럼 내가 회사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이 뇌리를 스쳤어.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정확하게는 20-30대에 일하던 것처럼 할 수 없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지.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이대로 쉬면서도 생활이 가능한걸까.
서울에는 50플러스라는 40대부터 60대까지 이용 가능한 중장년센터가 있어. 여기서는 여러가지 직업능력 개발과 중장년의 사회적응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내가 '노후설계'에 대한 강의를 들었었거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들어갔는데도, 거기에 계신 어르신들이 한번씩 쳐다보시더라고. 아마 내가 거기선 가장 어리지 않았을까. 내가 어딜가도 어리다는 소리를 듣는 나이는 아닌데 말이야.
거기서는 소득이 없어진 노후에 어떻게 생애 설계를 해야하는지 교육을 해주고 있었어. 근로소득, 내 몸뚱이로 만들어내는 소득이 없어지는 순간, 금융소득이나 기타 소득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기존의 국민연금정도가 전부라면 소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이전처럼 마치 소득이 있는것처럼 쓰던 버릇대로 쓰다간 돈 없고 건강이 상했을때 치료도 제대로 못하는 비참한 노후가 된다는 것도.
막연하게 그냥 쉬기에는 지금의 자금상태로는 무리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뭔가 구체적으로 생애주기별로 얘기를 들으니까 뒷통수를 크게 한번 맞은 것 같았어. 내가 40대에 이 강의를 들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 이미 재취업이나 시작을 하기에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이 강의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래, 내가 마치 퇴직자처럼 행동하기에 나는 또 너무 어렸던거야. 내 입으로 내가 어리다는 말을 하는게 민망하고 어색하지만, 거기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너무 애기였고, 아직 한창 때였던거지.
그래서 뭘 어쩌고 싶냐고? 그래. 그게 내가 지금 가진 두려움이야. 20-30대처럼 몸과 정신을 갈아가며 일을 할 수 없고, 그렇지만 퇴직자처럼 크게 마련해놓은 자금이나 소득 없이 살 수도 없어. 아직 그렇게 늙지도 못했지. 사회가 주는 명예외 존경의 눈길을 받으며 물러서기에 나는 아직도 설익은거야. 이전에 하던대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만두고 멈춰설 수도 없지. 그게 지금 나의 상태야. 아직 내 자리와 균형점을 잡지 못하고 어설프게 멈춘 상태. 남의 멘토가 되기에도 뭔가 어설픈것 같고, 이제 멘티가 되기에는 살아온 경험들이 너무 다양해져서,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헤쳐나가야만 하지.
한편으로는 이렇게 40대에 멈춰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해. 아마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더라면, 내 좌표와 나의 균형을 생각할 시간 따위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겠지. 얼마나 회사에서 생선성 있고 효율적인 부품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멈춰서 여유만 즐기기에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더라고. 핸드폰, 인터넷이 생겨난 이후 AI라는 가장 큰 변화가 인간의 '일'에 대한 정의를 빠르게 바꾸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AI기술과 앱과 에이전트들이 나오고 세상에 존재하는 일이라는 것은 로봇이나 AI에 의해 많이 대체되는 순간에 살고 있지. 이렇게 확보된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가장 인간다운 것이고 가장 나다운 것일까?
외부의 변화가 정신없을 수록, 변하지 않는 본질에 집중하고 내자신에게 집중하는게 중요해. 그리고 시간에 쫓겨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나를 방치하고 이전대로 세상에 그냥 쓰이는대로, 사는대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기를 기도해. 내가 중심을 잡고, 그렇게 다답게, 내가 주도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리고 40대 이후의 삶은 나만의 성장이 아니라, 나의 성장이 다른이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