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성장의 모습
운이 독이 될 수 있고, 독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상황 그 자체보다는 보탬이 된 것을 더 크게 생각한다.
흙탕물이 묻은 포장지를 여러 번 언박싱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 여전히 남아있는 좋은 것들의 대부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포장지에 돌돌 말아왔다는 거다. 흑백톤의 포장지가 오히려 좋은 걸 가져다주는 경험을 하면서 포장지 그 자체는 가짜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포장지 색이나 크기에 놀라 자빠지거나 숨이 턱턱 막혔다. 포장지 겉면에 휩쓸려 그 안에 있는 것도 같은 결로 받아들였다. 언박싱을 하기도 전에 포장지 색으로 그 안에 있는 것의 가치를 판단했다. 고정적인 것이라 생각해서 상황을 바꾸지 못했던 것 같다. 검은색 포장지에 온 것은 검은색으로 받아들였고, 회색 포장지는 그 안의 것도 회색일 거라 생각했다. 좋아 보이는 건 좋은 거고, 나빠 보이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 숱한 시련 덕분이야'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경험들이 쌓이면서 포장지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깨달았다. 인생 새옹지마라고, 실제 포장지의 결대로 결과가 이어지지는 게 아니었다. 좋은 게 꼭 좋은 것으로 남는 것도 아니고 나빠 보이는 게 꼭 안 좋은 결과로 남는 것도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 빚이 될 수도 있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던 게 평생 안고 가고 싶은 빛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일어난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과 습관이 중요한 것이었다.
시련에서 중요한 건 시련 그 자체보다 시련 안에서 있을 나의 태도이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마음속 느끼는 시련의 무게는 전보다 라이트 해질 수 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힘든 상황이 오면 나의 생각은 이렇게 셋팅되는 것 같다. '쉽지 않지만 망하지 않게 만들 수 있어. 오히려 끝이 복이 되게 만들 수 있어.' 내가 힘들 때, 나를 지켜주는 문장이 저절로 떠오른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두려운 상태에서도 자신감 잃고도 얼마든지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도 참 다행이다.
만약 너무 힘들면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까 고난과 맞서 내가 뭘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갖지 말자. 그땐 그게 최선이었겠다. 시련 안에서 근사한 건 없고, 그저 버티면 되고 그게 전부인 때도 있으니까. 시련을 겪고 있다면 있는 그 자리에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동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이루는 시작점이다.
예전에는 시련이 오면, 그 힘듦이 앗아간 걸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운이 독이 될 수 있고, 독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상황 그 자체보다는 보탬이 된 것을 더 크게 생각한다. 고난은 마치 레벨 높은 숨바꼭질 같지만 이 역시 페이크다. 잘 찾으면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있다. 잃은 것을 받아들이고 이미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새롭게 온 것을 반기면 된다. 포장지는 포장지일 뿐이니까 잠깐 놀라고 금방 받아들이고 얻게 될 것을 크게 생각하면 좋겠다. 숱한 시련 덕분에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 중 하나는 '외상 후 성장'의 모습이다. 살면서 아프지 않은 경험을 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 힘듦을 누구나 겪지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힘듦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련을 잘 보내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게 숱한 시련 덕분이었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시련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고 '외상 후 성장'의 단어로 승화된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뭐 그렇다 해도 고통이 아주 달가운 건 아니다. 시련은 시련이라서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는 없으니까 환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금세 받아들이고 다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고통과 같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말도 안 되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왔을 때의 모습은 그 전과는 무언가 달라진 모습이다. 내가 알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왠지 모르게 한층 성숙해 보인다면 이런 내공을 품고 돌아왔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때 그 모습을 낯설게 보지 않고 속으로 막 응원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하게 될 우리의 모든 인생 언박싱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