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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Aug 10. 2021

위로가 되는 위로를 하는 방법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대화

즐겨보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 수술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당황한 겨울은 급하게 익준을 호출했다. 수술실로 온 익준은 환자의 상태를 하나씩 체크를 했고 겨울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냈다.


수술을 잘 끝내지 못한 장겨울은 자책했다. "난 발전이란 게 없는 사람이에요. 전문의나 되서 그런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전 간 이식 못할 것 같다. 탤런트가 없다."


속상해하는 겨울에게 익준은 “너 지난달까지 전공의였어. 잘 보고 배우면 되지 괜찮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위로했지만 겨울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때, 장겨울은 이렇게 말한다.


"실패담을 얘기해주세요. 그게 더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위로는 어렵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해주고 슬픈 일이 생긴다면 작은 위로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후자는 어쩐지 더 어려운 일이 된다. 좋은 일은 어떻게든지 알게되서 축하해주지만 힘든 일은 나중에 알게되거나 영원히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는 게 바빠서, 짐이 될까봐, 걱정할까봐 말을 안한다. 힘든 일은 알아서 정리하는 것이 감정을 드러내는 편보다 꽤 괜찮은 어른인 것 처럼 보이니까.


누군가 깊은 동굴 속에 갇혀있어도 반대로 내가 그 안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서로서로 지나친다. 그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게, 정말 모르고 사는 게 서로에게 좋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은 평생 힘듦을 말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말하는 시기가 다를 뿐, 힘듦을 말하고 산다.





위로는 필요해

위로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단어 자체에서 약간 인위적인 것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약한 사람들이 쓰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위로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돌봐야하는 이유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크게 무너진다.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만 으면 살아갈  있다고 들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 자신을 위로할 수도 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해주는 내가  수도 있다. 뒤늦게 밀린 위로를 하며 크게 아파하지 말고 나를, 남을 위로했으면 좋겠다. 나의 힘없고 섣투른 위로는 위로가   있다.





위로가 되는 위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장겨울이 말한 대사처럼, 어떤 날엔 희망적인 메세지보다 힘든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 누군가의 마음이, 글이 더 위로가 된다.


하지만 위로는 구름처럼 모양도 크기도 다 달라서 어떤 말이 상대방에게 맞는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떠오르지 않을 땐 말을 아끼고 잘 들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힘들었던 속내를 같은 사람에게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에 그 사람에게 말했던 반응의 기억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힘들게 말한 내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의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그 온도가 차가웠다면, 했던 말을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특히 그 사람에게는 다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대화는 위로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고민을 말했을 때, 나와의 대화 온도를 따뜻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 오고갔던 대화는 점점 잊혀지더라도, 그때 그 상황의 온도와 분위기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 사람과의 대화 속 대사보다 나눈 대화의 온도가 따뜻했는지, 차가웠는지는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했던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았더라도 오고가는 대화 속의 분위기가 따뜻했다면, 그 사람은 말했던 것을 적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 역시 사실은 완벽한 위로를 받기 위해서 말한게 아니였기에,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된다. 어쩌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들어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지만 충분히 위로가 되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의도치않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누군가의 입을 닫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힘든 속내를 말해준다면 어설픈 위로와 함께 나는 잘 들어주고 싶다. 상대방이 시간이 지나도 그 대화를 차갑게 느끼지 않기를. 그래서 잠들기 전, 했던 말을 곱씹지 않는 편안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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