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바디>를 봤다. 몇 년 전 유튜브 짧은 광고 영상으로 처음 접했던 것 같다. 흥미가 생겼는데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최희서 님의 <기적일지도 몰라>라는 책에서 다시 이 영화를 마주했다. 달리기라는 소재의 영화를 촬영하며 느꼈던 감정에 대한 페이지를 읽으며, '이 영화 재밌겠다' 싶었는데?! 그때 알아차렸다. '아 그때 그 영화가 이 영화?!' 나는 요즘 달리기를 하고 있고 책도 재밌게 잘 읽었으니 이 영화를 안 볼 이유가 없었다. 바로 결제했다.
<아워바디> 줄거리
8년 동안 행시공부를 하는 자영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부터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고 부모님에게도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연히 현주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자영도 문득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현주의 도움으로 러닝 모임의 크루로 같이 뛰게 된다. 자영은 중학교 친구의 추천으로 알바를 하며 첫 사회생활을 한다. 자영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달리기를 한다. 점점 일의 능률도 올라간다. 반면 현주는 달리는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 자영은 현주가 나오지 않아도 달리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멈추고 싶은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자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목표도 없는 불확실성의 마음에서 달리는 이야기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달리기 밖에 없어서 '뛰다 보면 뭐라도 달라져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달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은 오히려 내 인생을 어떻게든 책임지는 모습 같았다. 왜 달리는지 왜 달리고 싶은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침울하고 어두운 화면과는 다르게 주인공의 내면은 단단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달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영은 어떤 마음으로 달렸을까', '현주는 어떤 마음으로 달렸을까, 그리고 왜 달리고 싶지 않아졌을까.'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요즘 어떤 마음으로 달리고 있을까'
달리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 엄마에게 시험 보러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영
자영은 오래 준비한 행시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고, 엄마에게 '나 시험 보러 안 갔어'라고 말한다. 자영이의 진짜 목소리는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안된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내려놓는 용기를 발휘했다. 부모님은 취직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지만 자영은 서른 하나라며 취직도 힘들 거라고 말했다. 자영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마음에 의기소침해 보이지만,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자영이 이젠 달라진 삶을 살 것처럼 보였다.
# 친구가 있는 회사에서 알바를 시작하는 자영
서른이 넘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자영은, 자신의 상황을 마주한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나, 동생에게 용돈 받는 나, 엄마에게 자취방 월세를 받는 나, 친구에게 알바 자리를 소개받는 나. 긴 시간 공부하며 자영은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그동안 작은 방 안에서 공부만 하며 무엇을 위해 달려간 걸까 허무하기만 하다. 결과 없는 인풋이라는 게 이런 걸까. 지금의 내 모습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자영은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 뛰는 현주의 몸을 보고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자영
공원을 걷던 중 자영은 우연히 현주가 뛰는 모습을 보고, 문득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영은 왜 뛰고 싶었을까. 목표가 사라졌다는 허무함에, 달리기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싶어서,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시키고 싶어서, 무언가에 해방되고 싶어서. 단 하나의 이유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달리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오히려 뛰고 난 이후에 자신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지만 일단 뛰어보니, 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달리기는 뛰는 만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 정직함과 단순함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더 이상 현주가 없는 달리기를 하는 자영
어쩌면 현주 뒤를 따라가며 달렸던 것이 자영도 몰랐던 목표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의지하며 달렸던 자영의 뒤를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자영은 마음이 힘들다. 이제야 정말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온 걸까. 건강한 몸을 가진 현주는 왜 뛰지 않는 걸까 자영은 혼란스럽다. 현주는 없지만 자영은 계속 달린다. 달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느끼면서 약한 모습을 진짜 받아들였을 때 자영은 성장했다.
돌아보면 누구나 좌절을 겪는 시기가 있다. 크고 작은 시련을 경험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는 걸 깨닫는다. 자영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끝내야 했을 때,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였다. 이곳에서 끝냈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시험과 그것을 둘러싼 프레임에 갇혀 있었지만 그녀는 깨고 나왔으니까. 시험을 보지 않는 건 하나의 결정일뿐이고, 인생의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 여정에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며 더 큰 내적성장을 이룬 것이다. 긴 여정이었다.
우리의 삶도 자영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라서 계속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에는 이 길이 나의 길인 것 같아 이곳을 목표 삼아 달렸는데, 어느쯤부터 이 길이 맞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는데, 아직도 그 길에 있는 건 아닐까.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긴 시간 그곳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그곳에서 나온다고 해도 쏟았던 노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녀의 긴 시간 공부했던 힘은 쓸데없지 않다. 그 노력은 다른 곳에서 어느 틈에 핀다. 달리기도 혼자서 잘 뛰고 있다. 친구가 소개해준 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가장 느리지만 일하는 실력도 늘어간다. 공부로 다년간 쌓아온 근성 덕분이다.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페이스로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기초실력을 쌓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계속 행시라는 맞지 않는 자리에 있었다면, 본인의 능력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보이기에 자영은 번번이 좌절을 경험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영은 매일 근성을 쌓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온 세상 같았던 것을 한 번에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쌓아온 인내로 계속 달릴 수도 있었다. 지금 그녀는 불안함을 마주하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목표가 사라졌어도 뛰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싶으니까. 그런 모습이 언니를 좋아하는 동생의 눈에는 보였을 것이다. 동생도 언니를 따라 뛰고 싶어 졌으니까. 일상적으로 좌절을 마주한 시간들을 달리기라는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 자영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