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게 살 필요 없다
대인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을 말한다. 말 그대로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타고나길 넓은 그릇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그 그릇을 넓혀간다. 모두가 인정하는 대인배가 있고 나에게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대인배로 통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 후자가 훨씬 많다. 전제조건은 나와 결이 맞아야, 나와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대인배도 주관적인 평가인 것이다.
대인배, 좋은 말이지만 내 것 하고 싶지는 않다
대인배이라 불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위대하다는 마음보다는 '그렇게까지 참는다고?'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특히 강요받거나 어쩔 수 없이 참는 희생일수록 더 그렇게 느껴진다. 어쩌면 요즘 대인배는 '대단하다'가 아니라 '대다나다'에 의미로도 쓰이는 게 아닐까. 이렇게 기존의 좋은 뜻을 가진 단어들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자꾸만 '보살'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람은 이기적인 동시에 착하다. 나에게 피해가 없는 선에서 잘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피해를 주는 순간에도 관대함을 베푸는 아량은 평판이야 더 좋아질 수 있겠지만 그 영혼은 어쩔 것인가. 나는 내 영혼을 먼저 챙기고 싶다. 그땐 너부터 제발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선을 긋는 너에게 훌륭하게 대할 필요 없다. 누군가 나에 대해서 안 좋게 얘기한다는 것,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예전보다 대수롭지 않게 그 감정을 빨리 넘길 뿐이다. 기억력이 감퇴해서 좋은 건 이럴 때다. 나에 대해 오해를 하는 사람, 나에게 벽을 두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 오해를 풀고 해명하고 더 잘해주는 것이 좋을까? 더 친절하게 대해주며 난 더 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그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어떻게해도 나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상대방이 나에게 거리를 두는 경우 꼭 훌륭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상황봐서 넘어갈 건 넘어가고 말해야 하는 건 말하고 침묵하고 싶으면 말을 아끼고 화를 내야 할 땐 내면 된다. 먼저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내 마음이 하고싶은대로 하면 된다. 그래도 된다. 날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훌륭하게 대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해서 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10명 중 2명은 나랑 잘 맞고 그중 6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나머지 둘은 날 싫어하기 마련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내가 모난구석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맞지 않아서 결이 달라서 싫을 수 있다. 또, 이유없이 싫어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관계도 있는 거고 그런 마음이 생길수도 있는 거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 어떤 신적인 존재도 미움을 받는데 하물며 나라는 보통 인간은 미움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고 해도 별 큰일이 아닌 것이다.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선을 긋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관대해져야 하는 걸까.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내가 더 잘해준다고 더 노력한다고 해서 좋아질 관계가 아니다. 오해 때문에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없이 싫어서 오해도 하는거다.
그러니까 노력으로 개선되는 관계라면, 내가 먼저 대인배처럼 아량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개선될 관계가 아닌 것에는 애쓰지 않는 것이 나다운 모습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먼저 선을 그으면 나도 선을 명확하게 그으면 된다. 나에게 유해한 사람에게까지 '나는 너에게 무해한 사람'이라며 증명해보이지 않아도 된다. 먼저 나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한다. 그건 나를 지키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나를 싫어하면 나도 당연히 마음이 떠나는 게 이치다. 나 자신을 지키는 건 오직 나뿐이고 그건 의무이자 권리이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절 좋아하게 만들 만큼 전 대인배가 아니거든요. 절 싫어하는 사람은 저도 안좋아하면 그만이니깐 - 아이유 -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되고 싶은 마음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근사하게 보이면서 불안한 것보다, 마음 편한 길이 항상 더 좋았다. 대인배를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 평판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는 항상 내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고 싶다. 이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지말고 굳이 뭐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나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니까. 그래서 누군가 관대함을 보이지 않고 훌륭해 보이지도 않는다면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용기내서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상대방이 선을 넘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나의 요구를 단호하게 말해야한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에 모든 것을 참아가며 희생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상대방의 이기심에 대해 나의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을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를 위해 나도 노력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관계는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내일도 거절받은 것에 마음 쓰지 말고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 훌륭한 사람 말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해한 아무'나'가 되면 된다. 그저 내가 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