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했든, 원치 않았든

Bye, Korea

by 코리안키위 제인

내 인생의 세 번째 비행기 탑승이었다. 첫 번째는, 미국에 여행 갔을 때 한 번. 사촌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두 번째는,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었고 그곳에서 말을 탔던 기억도 떠올랐다. 말을 탔을 때,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나 혼자만 무서워 경직된 표정으로 웃었지만, 웃는 게 아닌 그런 표정. 그리고 세 번째 비행기를 탑승했을 땐, 한국을 완전히 떠나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으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설렜던 마음이 점점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낯선 땅에서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정말 좋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 자연이 그대로, 바다도 가깝고 고층건물도 시내 빼고는 없는 그런 나라였다. 집들도 너무 예뻤고, 하늘의 구름들은 마치 그림 속에서나 봤던 것 같은 예쁜 구름들. 그리고, 엄청 큰 갈매기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공기가 아주 맑고 깨끗한 나라, 뉴질랜드. 그렇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디로 가게 될까?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음식도 나와 아주 잘 맞았고,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웃으며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도 좋았다. 왠지, 나 이곳에서 아주 평안하게 잘 지낼 것 같아. 하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뉴질랜드 생활에 적응하며 살다가 우리 가족 이민을 도와주신 분의 가족들과도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자녀들도 알게 되어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내곤 했다. 같은 한국인이었지만, 문화차이는 분명 존재했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들인 것 같았다. 표현에 직설적이었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그들이 내 눈엔 그저 신기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꾹꾹 눌렀다가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나와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리액션도 참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말만 쓰는 나에게, 그들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영어로 싸우기도 했고,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서 나도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다짐했지만 책만 펼치면 그렇게 하품이 나오고 지루하고 재미없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덮고, TV를 틀면, 온통 영어로 솰라솰라 떠들어대고. 현실자각타임이 아주 세게 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영어라면 질색팔색을 했던 내가, 그저 한국에서만 살아갈 줄 알았던 내 삶이 전혀 엉뚱한 영어권 나라에 와 있으니 매일매일이 심심하고 지루했다. 열심히는 해야겠는데, 도무지 내 몸뚱이는 열심과는 전혀 무관했다. 늘어져 잠만 자고, 그저 여기저기 따라다니느라 피곤하기만 했다. 풍경이 예쁘고, 사람들이 친절한 나라인 건 알겠는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도 이왕 뉴질랜드에 온 거, 잘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 다른 친구들은 외국에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라고 하는데 나는 부모님 덕분에 해외에 나와서 살고 있으니 잘 살아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막상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면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 어버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과는 아주 다르게 나는 부끄러움도 많고, 낯을 많이 가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국인들은, 2~3번 정도 물어본 후, 못 알아듣거나 계속 뭐라고? 물어보면 웃으며 괜찮다고 손짓하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점점 더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니, 가뜩이나 없던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목소리는 작아졌고 입 안에서만 우물우물거리는 나 자신이 참 바보 같아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냥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사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영어를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었다. 자신감부터 잃어버린 난, 그 후로도 영어를 잘할 리 만무했고, 늘 의기소침해 살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나 자신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수없이 자책하며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