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의 노래 (2021년 공연 후기, 홍규/레옹 위주)
-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 (2021) 후기 (홍규/레옹 위주)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자유의 꿈, 평등의 꿈, 무모해 보이는 꿈을 꾸며 죽어간 이들을 위한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의 노래."
1789년 프랑스 파리와 1884년 한성.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관통하여 일어난 혁명의 불길, 그리고 그 불길에 몸을 던진 이들의 이야기가 극을 통하여 전해진다.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의 노래'. 이것이 <라 레볼뤼시옹>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는 누굴까?
극중에서 홍규가 서도와 왕비전에서 대화를 나눌 때, 자기 신념과 애타는 소망을 고백하면서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를 언급한다.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거야.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우리의 꿈이 얼마나 성급하고 무모한지 뼈아프게 알고 있었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우린 꿈을 꾸고, 우린 죽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죽어간 그 피웅덩이에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가 서 있을 거야. 그 아이는 알아. 우리가 어떤 꿈을 꾸고, 왜 죽었는지."
즉 홍규가 바라던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는, 남들은 무모하고 가망없는 한낱 객기라고 비웃던 그것을 간절함과 열정으로 빛나던 '꿈'으로서 보아줄, 훗날 걸어올 사람을 말한 것이다.
무언가가 빛나려면, 그 빛의 근원이 필요하다. 하늘에 뜬 별 대부분도 실은 홀로 빛나지 않고 태양빛을 반사해서 빛나지 않는가.
따라서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눈을 빛나게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 빛, 자유와 평등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타올랐던 빛을 품고 나아간 사람, 기꺼이 자신이 걸어간 길에 남은 발자국을 피로 물들여가며 기어이 올 봄을 품고 달려나간 사람이 누굴까?
"난 나를 던져볼 거야. 하필이면 이 시대에, 하필이면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기어이 봄은 올 거야."
끝까지 꿈을 껴안고 삶을 불살라 바친 홍규.
그렇게 타오른 그의 삶이, 훗날 걸어올 이들의 눈에 빛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홍규가 꿈꾸던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는, 결국 홍규 그 자신이 '빛나는 눈'으로서 살아갔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홍규는 그 빛을 어디서 받았을까?
"법국(法國)의 그들도 혁명의 성공을 믿었을까?"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프랑스 인권 선언을 자기만의 필체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내려가며, 홍규는 저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비록 잡설이라고 질책하기는 했지만, 그도 <레옹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가난한 서민 청년 레옹이 시민들을 이끌고 광장으로 달려나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대목을, 홍규는 남몰래 몇 번이고 읽어보지 않았을까?
사치와 향락과 부패로 드높이 쌓아 올린 귀족의 댐을 온몸으로 들이받아 자유의 강, 평등의 강이 범람하도록 분투한 레옹. 홍규는 책 속 레옹에게서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레옹이 지핀 혁명의 불꽃이, 백여 년 후 세상의 끝에서 꿈을 꾸던 조선 청년의 눈에 빛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1789년 레옹이 터뜨린 혁명의 불길은
1884년 홍규의 삶에 옮겨 붙었고,
그리고 현재, 21세기, 우리는 그들이 남긴 빛을 노래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들이 그 꿈을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죽었는지.
전해져 온 그 빛이,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노래하게 하고 있다.
극을 볼 때마다 거듭 반성했다. 역사 속 수많은 홍규가 자신을 불살라가며 꾸었던 꿈을, 역사책 속 지나가는 한 줄로만 기억했던 내 지난 날이 부끄러웠다.
내 눈앞에 지금 1884년의 홍규가 나타난다면 과연 나는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문득 고민해 보았다.
다만 한 마디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몰랐어서."
그런데 홍규가 꼭 내게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았다.
"괜찮다. 지금 내가 꾸었던 꿈을, 내가 던졌던 삶을 노래하고 있는 네 눈이 빛나고 있으니."
극이 막을 내리더라도, 그 빛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며 노래하고 싶다.
홍규가 마지막으로 노래했던 것처럼...
"세상이 모두 사라져도
잔인하고 뜨거운 사흘간의 기억이
영원토록 내 가슴에 타오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