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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

by 이각형

오래된 물건에 정이 붙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새것이라고 해도 정든 물건만큼 값진 것도 없다.



나이가 들어 인간관계의 폭도 좁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매번 사용하던 물건에만 손이 가곤 한다. 전자기계라고 다를 게 없다.



핸드폰도 그중의 하나인데 게임도 하지 않고 그저 활용하는 기능으로는 전화와 문자, 카카오톡 같은 SNS 앱 그리고 카메라가 전부다.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고사양의 최신 핸드폰이 필요할 리가 없다. 물론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문제로 인해 고사양의 핸드폰을 구입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핸드폰을 세상과의 연결되는 도구로 사용하는 나와 같은 소비자에겐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 핸드폰을 사용한 지가 4년이 되어간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핸드폰 기종도 아닌 데다가 4년을 쓰고 있다는 점 또한 유별난 것이 아니다.



그저 오랜만에 액정보호필름을 새롭게 교체하면서 이녀석하고도 정이 참 많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게 되었을 뿐이다. 보호필름을 교체하게 된 것도 실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얼마 전 새로운 핸드폰으로 교체할까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었다. 아마도 마음이 허해진 탓에 그런 엉뚱한 일을 벌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소비욕을 보여줄 때 심리학자들은 그 원인을 보통 공허함에서 찾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내 경우가 그에 해당될 것이다. 새로운 물건이 생활반경 내에 들어오게 되면 호기심이 생기고,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관심이 생활습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상당히 신경을 쓰게 됨으로써 공허함을 채우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작용을 뻔히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약한 의지를 가진 나로서도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비욕을 부추긴 모양이었다. 그러다가도 오랜 기간 동안 뻔히 잘 쓰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문제점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핸드폰을 통해 특별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소비욕은 저절로 사그라들었다.



그나마 이 낡고 하찮은 나의 소유물을 조금이라도 새롭게 단장하겠다는 의미로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변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필름을 사놓고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실제로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정국이 어수선한데 세계정세도 특별히 우리나라 경제에 유리할 것이 없어진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교체되었다. 새롭게 모신 대표이사는 자칭 영업의 달인이라면서 정작 본부에서 일한 경력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한다.



영업 일선에서 오랫동안 일해 본 사람들의 주요 특징은 본부 사람에 대한 은근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자신이 본부의 지원을 여실히 원할 때 정작 본부는 등을 돌렸다며 본부직원에 대한 좋은 기억은 거의 없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사에서도 그는 영업 현장에 대한 본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요구라기보다는 천명에 가까웠고, 보다 명확하게는 으름장과도 같았다.



이렇게 달라진 본부의 분위기는 근무환경에 제일 먼저 영향을 미쳤다. 업무시간이 시작하기 30분 전까지 출근시간을 엄수하라는 독려 아닌 독려와 더불어 업무시간에는 업무 외에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라는 당부까지 담긴 메일을 받는 국면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근태와 관련된 문제는 일이라는 것이 산적하게 쌓여 있을 때엔 발생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책상이 무너질 만큼 쌓여있지도 않다.



이러한 점은 근태에 있어서 미묘한 의미를 갖게 만든다. 사람이 매분매초 어떻게 일만 할 수 있냐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누구나 갖고 있지만, 직장에서는 한순간이라도 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자 지배관념도 동시에 우리를 얽매이게 하고 있다.



양립할 수 없는 이러한 두 관념은 보통 팽팽한 줄다리를 하지도 않는다. 다만 회사의 실적이라든가 회사 안팎의 분위기에 따라 어느 한쪽이 우세해지는 경우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정국도 뒤숭숭한 데다가 억울한 희생이 전국에 애도의 물결을 일으킨 시점에서는 당연지사 근태에 각박한 분위기가 확산될 따름이다. 특히 연말연시 희망퇴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면 무언의 정신교육을 받고 있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이때 자칫 방심한 채로 인사고과자의 눈 밖에 나버리면 불쾌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다못해 그것이 그저 핸드폰 화면이 활성화되어 있는 아주 극히 사소한 장면에 불과할지라도 불씨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방심하기는커녕 강박관념을 앞설 정도로 철두철미한 방어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평소에 불필요하게 여겼던 장비들이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자 도구가 된다.



도구는 기능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피력하는 법이다. 사생활 보호, 결국 그것은 자신을 위하는 일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최고 경영진의 교체가 핸드폰 화면을 감출 수 있는 소비로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쇄작용을 이해하는 일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쇄작용을 그런 사건이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예측해 대비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행동심리학자 데이비드 카너먼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위가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에 한층 들떠 있을 때 경제학에서 발생한 이변에는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었다. 데이비드 카너먼 교수는 하나의 명제로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밀턴 프리드먼에게 사망 선고를 했다.



인간은 미래를 미리 상상해서 대비할 수 없다. 이토록 단순한 명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참으로 오만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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