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방법에 관한 안내서는 참 많다. 책도 많을 뿐만 아니라 브런치나 블로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글들이 널려 있다.
찾아보면 주로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나열해 놓을 뿐이다. 그 어떤 글에서도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글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고사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배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없는 것처럼 희망과 용기만 북돋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물론 나도 책 한 권도 출판해보지 못한 보잘것없는 문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예의는 잘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정말 반드시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인 "필자"에 관해서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필자"는 글을 쓸 때 써서는 안 되는 금기어 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바로 이 금기어를 모른 채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는 점이다. 다행히 브런치에서는 그런 작가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까지 브런치에서는 본 적이 없다. 다만 네이버 블로그를 가끔 보다 보면 자신을 두고 "필자"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잘 읽고 있다가도 자신을 "필자"라고 표현하는 대목을 마주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두고 보통 대문호, 집필가라고 부르고 있다. 대문호는 대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던 훌륭한 작품을 다수 남긴 문학가에게 붙이는 칭호이며, 집필가는 주로 비문학 분야에서 왕성환 활동을 보여준 문장가들에게 남기는 말이다.
이 중에서도 집필가는 실제로 문장 속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드물게 "필자"로 대신한다.
그것도 작가가 자신을 지칭할 때가 아니다. 자신이 소개하는 책의 작가에 대해 존칭으로서 "필자"를 사용하는 편이다. (물론 극존칭까지는 아니고 가벼운 수준에 불과하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드문 경우에 한해 발견되곤 한다. 그만큼 "필자"라는 호칭은 금기어로 여겨지고 있다.
필자라는 단어에 대한 태도는 학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석사, 박사 등 각 학위별 논문을 쓸 때 우리나라에서는 "필자"라는 말이 금지되어 있다.
사용하는 빈도도 물론 적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의미도 제한적이었다. 논문에서 "필자"라고 쓸 때에는 그 논문을 쓴 사람이 아닌 다른 논문을 쓴 사람을 인용할 때 쓰지만 이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는 제한적 장치를 두었다.
다시 말해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인용할 때에도 연구자라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며, 필자라고 쓰는 건 절대적 객관성이 확보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학계에서도 자기 자신을 "필자"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토록 예우와 격식을 차린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자신을 두고 "필자"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곧 독자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짐이 곧 국가"라고 말했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떠올려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문명인 중에서 "내가 곧 국가"라는 말을 들으면 과연 무슨 생각을 갖겠는가? 반감이 들지 않는가?
글쓰기에서 "필자"로 자신을 지칭하는 것은 바로 이와 버금가는 말이다. 필자, 글을 쓰는 사람 다시 말해서 글을 쓸 만큼 지적으로 뛰어난 자임을 스스로 자부하는 것이다.
예부터 인류 역사를 뒤집은 중요한 흐름에서 혁명과 혁신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언어였다. 언어는 곧 사유이며 관념이자 세계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언어에 담아두기 때문이다. 봉건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이 아닌 사회계약설이었다.
절대왕정이 단지 서민들을 쥐어짜서 못살게 굴어서가 아니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배자의 압제에 시름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어느 역사점 시점에 사회계약설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바로 언어를 통해서였다.
사람들이 그의 언어를 귀담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사상을 주창한 사람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동등한 개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루쏘와 로크가 사회계약설을 주장하면서 대중에게 "당신들은 하찮은 존재여서 이런 것도 몰랐지만 필자인 내가 대신해서 이론적 기반을 확립시켜 주었으니 마음껏 혁명을 일으켜보시라"라고 했다면 과연 봉건주의가 무너졌을까?
만일 사회계약설이 또 다른 왕조를 탄생시키는 데에 단초가 될 만한 기미가 보였더라면 사회계약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절대다수를 위한 관념의 주창자조차 수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역사적 이념을 불태웠었다.
또한 지금까지 이 땅에 살면서 수많은 위대한 작품을 남긴 문학가, 철학자 등 지적인 거장들은 자신에게 "필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예가 거의 없다. 네이버 블로그라는 매체의 무게감을 정확히 모르긴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필자"라는 말로 자신의 문장에 갑옷을 입히는 일은 나로서는 언감생심의 일이다.
지적 거인들도 스스로를 낮추기 바빴다. 이 세상에 지적으로 탁웥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과연 그 누가 글을 쓰면서 몸을 낮추지 않겠는가.
쇼펜하우어도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하기 전에 칸트와 인도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의 베다 그리고 플라톤을 연구했었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칸트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두고 "나"라고 했을지언정 단 한 번도 "필자"를 쓴 적이 없다. 쇼펜하어우도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플라톤과 칸트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빚진 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학은 이전 세대의 철학을 비판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비판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위대한 철학자들 중에서 그 누구도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으로 위대해지지 않았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하이든이 교향곡의 표준을 세웠지만, 그의 제자인 베토벤이 바로 그 표준을 바꿔 버렸고, 또 모차르트가 베토벤의 교향곡 기준을 자신의 뜻대로 변경했다. 모두 선배 세대에 자신의 공로가 진 빚이 있다.
에릭 블레어, 나쓰메 간노스케, 빅토르 위고, 마르셀 프루스트, 헤르만 헤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니체, 플라톤 등등등 지금까지 수많은 지적 거인들의 글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필자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찌 우리들이 고작 인터넷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글을 올리면서 자신에게 "필자"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