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모순의 굴레에서
인간이 가장 피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모순일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어지러운 일들을 보면 그 점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자기모순이라는 그물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만민에게 선포한 그조차도 정작 자신에게 사법부의 서슬 퍼런 권능이 머리 위로 들이닥치자 슬그머니 몰지각의 세계로 도망치고 말았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 생각을 거듭할수록 지향하는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고비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스스로를 현시대에서 멀찌감치 비켜선 채로 세상을 관조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조차도 인간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은 썩 달갑지가 않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삶은 고난의 연속이며 삶의 기본값은 고통이라고 여겨야 하거늘 그러지 못하는 것 또한 인생의 일부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방황의 끝을 마주 보게 되겠지라는 기대감도 지치게 만들 때가 있다. 이런 때엔 위안거리가 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이토록 모순의 함정에 빠졌을 때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절망에 깊숙이 빠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에는 우회로가 없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도 이 점을 주목했다.
해세에게서 빌려온 지혜로 코끝에 의식을 두고 있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고통의 세계를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자상한 말을 남겨준 그의 마음을 살펴보게 되었다.
얼마나 수많은 고통을 견디며 살아왔길래 그는 따듯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남겼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자살충동을 이겨내고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가로운 곳에서 인생을 보낸 그가 부럽기만 했다.
산속의 오솔길로 접어드는 곳에서 잠시 멈춰 뒤를 보고 싶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날카로운 것이 얼굴을 스치는 것만 같다.
창문에 부딪히는 바람의 소리가 매서웠다.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하늘에 무거운 가슴을 걸어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