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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

by 이각형


인간은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 머물던 곳을 떠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이런 말로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돌이켜 보니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더라고요."



불완전하지만 지적인 존재가 갖길 바라는 한 가지 신과 같은 무한한 능력이 있다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을 원할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잠깐만 고민해 봐도 일일이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우리는 나약한 육체에 둘러싸여 있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몸이 병들어 가눌 수 없을 때 한없이 안으로만 파고드는 자신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존재라는 사실에 비로소 맞닥뜨리게 된다.



이처럼 유기적인 실체를 가진 인간은 유리병처럼 유약하다. 1초라는 찰나에 가까운 시간 뒤에 벌어질 일들을 알 수 없어 발버둥 친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를 소비한다. 갈망을 위해 현재를 소비한다.



그러나 갈망이 빚은 미래가 우리를 배신하는 일이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무수한 실패를 모르지 않기에 더더욱 매진하는 인간은 누구나 시시포스와 같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시시포스의 처벌은 오히려 달콤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지 못한다면 바위를 굴리고 있는 일이 희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일 테니.



상상적 실험은 언제나 한계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실험이란 우리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비록 이런 이야기들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일지라도 이러한 사고실험은 누구나 말없이 매 순간 벌이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인간은 관념적 존재이다.



우리에게 관념을 부여한 절대자는 무엇을 바랐기에 이토록 부질없는 기관을 준 것인가? 아마도 저주일지도 모른다.



지식을 추구할지라도 인간은 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저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추구하는 지식은 모두 과거에 한정된 것이기에 신적인 속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탐구정신이 주어졌다는 것은 저주이거나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는 숙명일 것이다. 대신에 신은 깜빡하고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의사가 개복수술을 마무리하면서 환자 위에 올려놓았던 수술도구를 그대로 둔 채 봉합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창의성이라는 암시적인 미적 가치를 추구하게끔 했다. 그중에 가장 분명한 것은 바로 은유일 것이다.



인간이 은유로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신을 따라 하는 놀이일지도 모른다. 시인이 노래하는 은유는 그만큼 가혹하다.



신이 되지 못하는 이가 신에 가장 가까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란 얼마나 슬픈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래서 신이 내게 무엇을 가장 갖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미래를 알고 그 미래를 마치 현실처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비록 닫힌 결말이라고 해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그 안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찰나의 순간조차 내 영혼을 노래하겠노라고.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나는 모든 것을 바쳐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적어도 두려움 없이 존재적 갈망을 소진하기를 바란다고 애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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