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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pr 15. 2023

신은 훔쳐가라고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다.

오르테가의 도움을 받아

신은 훔쳐가라고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다.(오르테가 이 가세트, 예술의 비인간화 '지오꼰다'중에서)

나도 키가 작은 남자이지만 지금까지 반 구십 년을 살아오면서 키가 작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작은 키를 멸시하는 속물근성을 가진 타자화의 대표선수 격인 것처럼 내비칠 것 같아 다음의 말들을 꼭 덧붙여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작은 키에 대한 편견조차도 없었다. 그저 내 시선의 테두리 밖에 있었을 뿐이며 그러한 테두리를 뚫고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지하철에 올라타더니 내 앞으로 쓱 다가서는 것이었다. 앉아 있었던 터라 특별히 그녀의 키가 작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아마도 그녀의 주변에 함께 서 있던 보통 키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눈치를 챌 수 있었을 테지만 지하철은 의외로 한산했었다.

대중교통 시설 내에서 이제 마스크가 권고사항으로 한 걸음 뒤로 자신의 위치를 물러선 덕분에 그녀의 얼굴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별히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신에 어떤 자리에서 서게 된다면 남자의 눈길이 한 번쯤 그녀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겠구나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곧 내릴 때가 왔는데 그녀가 지하철 문 앞으로 슬그머니 움직였고, 나 또한 내려야 할 역에 지하철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하철이 멈추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난 그녀의 키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몸짓에 이끌려 살아온 덕분에 그녀의 행동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조심성이 있었다. 그녀의 그런 조심성은 내릴 준비를 하면서 자신으로 하여금 마스크를 쓰게 만들었다. 이런 엉뚱한 모습이 옆눈길로 보이면서 조금은 뭐랄까 현실적이지 못한 마음의 상태를 읽을 수 있었다.

드디어 지하철 문이 열렸다. 이때 그녀의 습관 같은 조심성은 또 한 번 자신의 존재를 소리 없이 내게 알려주었는데 나보다 먼저 문을 빠져나가도 되는 상태였는데도 그녀는 내가 발걸음을 띄려고 하자 내게 선두를 양보한 것이었다.

그녀가 양보해 준 덕분에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편안하게 지하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교통카드를 태그 하려던 그때였다. 작은 체구의 그녀가 뒤에서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내 시야 안으로 나타나더니 후다닥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역에서 빠져나와서는 아마 지각할지도 모를 위기에 봉착했는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키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높은 굽의 하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불구하고 달리는 자세가 매우 역동적이면서 동시에 안정적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컬을 만들어놓은 어깨 정도 기장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어깨 뒤로 파도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검은색 슬랙스 바지와 하얀 컨버스의 조합은 눈길을 끄는 데에 특별히 유리했다. 검은 물체가 정확한 형태를 포착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 끝에 달린 하얀색 물체만이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땅을 짚었다가 하늘을 차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또한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발목에 닿을 듯 말 듯할 정도로 길게 늘어진 검은색 롱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람을 맞아 볼록해진 코트 밑단이 따라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가죽으로 만든 롱코트를 입고 중력을 무시하고 총을 쏘아대던 트리니티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더군다나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게 아니라 갑자기 골목길로 진입하기 위해 인도에 코빼기를 내민 차량의 위협적인 등장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반응 없이, 속도도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차량이 진입을 멈출 것이라는 선견적인 계산이 섰는지 멈추거나 달음질의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다시 앞을 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쯤의 행동거지를 봤을 때 그녀의 운동신경은 생각보다, 아니 보기보다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면 눈길을 주지 않았을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신경 쓰였던 건 모두 지오꼰다에 대한 글을 읽은 탓이었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나는 지오꼰다의 글을 읽고 있었다. 레오나르도에게 영원한 여성상을 심어준 피렌체의 그녀에 관한 글이었다.

오르테가는 그녀를 이렇게 칭송했다.

"야망과 쾌락과 울적함을 가슴에 안고 부대끼던 스무 살의 젊은이들이 충고를 얻으려고, 또는 어떤 해결책을 찾고자 그리고 내적 모험을 실현하고자 그 캔버스 앞에서 방황하곤 했었다."

"모나리자는 현자와 석학들에게 모든 지식은 암울하며 짜인 개념의 틈바구니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도망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무감각한 감각에게는 가장 훌륭한 애정의 표현은 엄격하고도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들의 것이라고 말을 했다. 은둔자에게는 그가 원하든 말든 곡선과 파선이 존재한다고 말해주었다. 공학자에게는 그의 주위로 시의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었고, 시인에게는 시란 행동의 기생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모나리자의 그림을 떠올리며 오르테가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나리자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욕망이라든가 희열을 향한 절박함은 모순에 기대고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화면으로 봤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름답기는커녕 어떤 욕망을 희구해 본 적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오르테가가 말해준, 유럽의 젊은이들이 부푼 가슴을 이끌고 그 캔버스 앞에서 방황했다는 말에 동화된 나머지, 공학자의 주변에 시의 전류가 흐르고 있으며 시인에게는 시란 그저 행동의 기생체에 불과하다는 걸 일러준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그에게 이미 감화되어 나의 모든 내적 감동에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 내 앞에 나타난 작은 체구의 그녀가 수줍은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그녀가 달려가는 뒷모습에서 전해진 그 어떠한 생동감이 내 가슴을 파고들기란 과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로서는 시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심장이 몸 구석구석 붉고 따듯한 피를 뿜어내고 있을 때 함께 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은 아름다움을 훔쳐가라고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다. 훔치려고 하는 열망은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으로 그저 바라보고자 하는 고요한 기쁨보다는 훨씬 영웅적이다.

"바사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오꼰도의 부인은 아주 아름다웠는데, 그녀는 레오나르도에게 하나의 본보기로 사용되었다. 레오나르도는 거기에 그녀의 신경과 근육이 긴장 상태로 유지되도록 기교를 부려야만 했다. 그녀가 미소 지은 상태로 있도록 하기 위해 작업실로 악사와 무희, 광대들을 불렀다.

광대의 짓궂은 익살에 미소 짓느라 따분한 귀족생활을 잠시 중단한 한 여인이라는 이 현실적 자재는 최고의 예술품이라면 늘 보여주는 존재의 비극적 상황을 표현하기까지 레오나르도의 작품 안에 잠재해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예술의 비인간화 "지오꼰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나머지 내 시선이 도난당했다. 그러자 그녀의 아름다움을 훔치고 싶어졌다. 다소곳하기만 할 줄 알았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적극적인 생동감과 그 에너지의 발현,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갈 수 있는 자신감, 자신의 외적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섬세하게 선택했던 의상, 신발과 같은 사소한 감각들.

작은 키로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그녀에게서 우울이라는 중력을 기대했던 나였지만 늦지 않으려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뛰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에서 직장인이자 사회인이라는 존재의 비극적 모순을 발견하는 순간 이내 그녀의 아름다움을 훔치고 싶었다.

남자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순수하게 여성적인 이러한 섬세함과 미묘함, 그 사이에서 우리 남자들은 사랑을 희구하고 이해하고자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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