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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AI에게 기대하는 것들에 관하여

by 이각형




요즘 AI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습니다. 누구나 쉽게 핸드폰으로 Chat GPT니 제미나이니 하는 AI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제가 쓴 글에 대한 객관적인 비평이라든지 마라톤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Chat GPT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AI를 대할 때 우리는 보통 평서문으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의문문으로 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타인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AI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아마 모르긴 해도 AI를 활용하는 사용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목적일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무의식 중에 의도한 두 가지의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란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필요, 그 정도의 차이입니다.


누군가는 바쁜 생활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AI를 수단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할 것입니다.


결국 AI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는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AI가 출현하기 전부터 인류가 사물에 대해 갖고 있던 태도에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리모컨이 처음 나타났을 때 리모컨에 대한 사람들의 첫 반응에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리모컨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소파에 누워 있으면서 4개밖에 안 되는 공중파 채널 사이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잖습니까? 리모컨이 나타나기 전까지 채널을 바꾸기 위해서 소파에 누워 있던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과거와 비교해 보면 인류의 첫 반응이 어땠는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당시 우리는 리모컨을 통해 자유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나태함을 상쇄시켜 주는 타당하고 든든한 보완재를 확보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편했습니까?


리모컨의 출현 덕분에 채널 변경의 수행자가 가장 막내였던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막내에게 시키던 사람도, 채널을 바꾸려던 막내도 유쾌하지 않았던 상횡을 우리는 회피할 수 있었던 겁니다. 바로 리모컨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리모컨의 편리성은 우리가 코로 숨 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주어진 현실이 되어바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리모컨에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서 어떤 방향에서도 10미터 거리 안에서 마음껏 텔레비전 화면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편리함이라는 효율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기능을 부여한 결과물입니다. 즉 리모컨은 이제 효율적인 도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도구로서의 역살로 변모한 것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AI의 태동기로서 그저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는 편리성에 현혹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AI를 활용함으로써 훨씬 더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리모컨처럼 효율성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 자리는 효과성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효과성은 결과의 실질적인 혜택입니다. 따라서 AI의 발전 방향은 효율성, 우리의 시간을 아껴주는 기능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도구로써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이미 AI개발업체들은 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AI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큰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러한 도구가 우리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핸드폰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AI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AI로 인한 혜택을 누릴 날이 오게 됩니다. 대신에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있습니다.


AI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대세의 흐름은 이미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간성을 AI에게 양도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성을 보존하고 보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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