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Half Marathon

인생의 축소판, 마라톤

by 이각형



2025년 11월 16일 MBN 하프 마라톤을 뛰고 왔다. 이번 대회는 9월엔가 추가 접수를 시작했을 때 급한 마음으로 접수했던 건이다.

그때만 해도 하프 코스를 뛰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고 과제였었다. 그러나 2주 전 JTBC 풀 코스를 뛰고 나니 자연스레 하프 코스는 뭔가 좀 긴장감도 떨어지고 참가 의지도 예전과 달랐다.

그래서인지 풀코스를 뛰던 날 4시 30분에 일어난 것에 비해 오늘은 너무도 일어나기가 싫었다. 간신히 5시 50분쯤 눈을 떠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20분 전에 들었던 알람 소리에 정신은 깨긴 했지만 굳이 이 추운 날 고작 하프를 뛰러 가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던 이유가 바로 코스였다.

2주 전에 달렸던 JTBC 풀 코스와 오늘 MBN 하프 코스는 90% 구간이 겹쳤다. 다른 거라곤 고작해야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남대문 앞에서 을지로 입구 방향으로 뛰다가 을지로 3가 쪽으로 잠깐 달려갔다가 유턴으로 종각역으로 돌아가는 정도였다.

그 뒤로는 종로 일대, 동대문, 신설동, 어린이대공원, 군자교, 잠실대교까지 모두 똑같았다. 그저 결승점이 종합운동장 바로 옆 신천중학교에서 끝난 것만 달랐을 뿐이다.

JTBC 대회 때만 해도 풀 코스라는 새롭고 약간은 거창한 도전 말고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여의도와 종로 일대와 잠실대교 등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길을 두 다리로 뛸 수 있다는 점이 훨씬 설레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같은 길을 달린다는 걸 알게 된 이상 MBN 대회가 딱히 매력적이거나 신선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회를 앞둔 금요일 점심시간에 팀장님께서 나에게 혹시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냐고 물어봤다. 사실 팀장님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 약속 날짜가 다가오기를 고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느끼면서 행복감에 젖어드는 자신을 빗대어 나를 이해하고자 한 시도에 불과했다.

당시에 나는 설레진 않는다고 답변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에 도취된 나머지 하프 마라톤을 너무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특유의 경각심이 감돌았던 때문이 더 컸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치러지는 새벽, 일어나기조차 싫었다.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대회 참가를 피할 구실을 이불속에서 찾고만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게으르다는 핀잔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기만 했다. 하여 결국엔 5시 50분, 느지막이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 결과 지난 두 번의 대회 때와는 다르게 8시 출발을 30분 앞두고서야 겨우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2만 명이 함께 달리는 대회이고 지각한 만큼 발 디딜 틈도 없을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출발하기 전에 아주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그만큼 긴장감도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난 대회에서 출발하자마자 길가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해결한 것이 떠올라 화장실을 찾았다. 15분 동안 줄을 서서야 겨우 볼일을 마치고 배정된 출발 그룹이었던 G그룹을 찾아 나섰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 쪽 끄트머리에서야 출발 그룹을 어렵사리 찾아 합류했다. 그리고서 대략 30분을 기다린 끝에 미대사관과 KT 광화문 빌딩 사이에 마련된 출발선에 섰다.

출발 총소리와 함께 G그룹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출발선을 넘었다. 시청 그리고 남대문을 향해.

메이저대회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그중 가장 피부로 와닿는 한 가지가 바로 대규모의 인파다. 그래서 혼자 길을 찾아 나설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 페이스를 유지한 채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그래서 무리의 머리가 왼쪽으로 쏠리면 나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길을 휘감아 돌면 나도 자연스럽게 한 무리에 속해 뛰어가면 그만이다.

그렇게 좌로 한 번 꺾어 신세계 백화점을 향해 가는 도중 갑자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왼발을 내 두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깡충거리며 제 자리애서 살짝 점프를 해서 간신히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돌진한 그 여자의 등 뒤를 매서운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기 위해서 우측 끝에서 좌측 끝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남자친구 곁으로 다시 합류하면서 "괜찮아?"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살짝 어이를 상실하기도 했지만 그때 마침 3km에 도달했다는 스마트 워치의 알림이 내 귀를 잡아당겼다.

3km 구간 페이스가 자그마치 정확히 5분 5초였다. 순간 깜짝 놀라 페이스를 늦추고 말았다.

이번 하프 대회에서 내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3km까지는 몸풀기 구간으로 5분 40초의 페이스로 달린다.

첫 3km에서 컨디션을 확인하고 페이스를 살짝 끌어오려 3~10km까지 7km는 5분 30초의 페이스로 탄력을 붙인다. 그러고 나서 10km~16km 구간은 조금 더 분발해 5분 20초로 끌어올려 10km를 달려온 탄력을 굳히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5km 구간인 16km에서 21.0975km까지는 막판 스퍼트로 5분 10초로 빠르게 달려보기로 한다. 이것이 나의 전략이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km 구간에서 벌써 5분 5초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라톤은 초반보다는 중후반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 체력을 낭비해선 안 되었다.

그래서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속도를 줄여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을지로입구에 다다랐다.

을지로입구, 여긴 나의 20대, 30대 그리고 현재의 40대를 장식한 주 무대이다. 최종합격했던 4개의 회사, 그중 인사정보시스템에 내 이름이 등록된 3개의 회사가 모두 이 좁은 거리에 몰려 있었다.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눈앞에 흘러갔다. 새벽까지 밤샘 근무를 했던 그때의 내 모습들과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며 그 앞을 달려가는 현재의 나는 다르긴 달라도 분명 하나의 연속적인 존재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누적된 일련의 기억들, 그것이 바로 나의 의식을 이룬다. 10년 뒤 다시 내가 이 길 위에서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그날에도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다.

서로의 실수로 상처를 주고받은 가족들도 언제나 내게는 따듯하고 아름다운 분들이다. 모자란 아들에게 자신의 고백을 들려준 아버지, 태어날 때부터 나를 응원하셨다는 어머니께서 내게 안아달라고 했을 때 우리는 모두 30년 전, 20년 전, 10년 전의 상처에서 회복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가슴에 품었다.

이토록 가족은 회복의 그 무엇이다. 부모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내가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것도 바로 이 을지로라는 곳에서 말이다. 부모님께서 사랑하시고 응원해 주시는 이 못난 아들은 겁이 너무 많아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사람들,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마음을 나눠주고 싶어 했다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남을 나보다 못하게 여기고 그를 밟고 내가 올라서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록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지만 돈이 아니라 미덕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 그 뜻을 얻고 싶어 한, 사회인으로서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언젠간 을지로에서 부모님이 뛰어가는 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의 철부지 같은 모습뿐만 아니라 가치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달려 나가는 이 형이상학적인 나를.

그래서 그분들의 마지막 모습에 나는 추억의 한 조각, 마치 찬란한 광휘의 한 조각으로 간직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교만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은 그저 삶의 의미, 내게 생을 허락한 그분의 뜻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종로를 지나 동대문 앞까지 달려왔다. 종각역부터 잠실대교까지의 길을 달려온 2주 전이 떠올랐다.

약간은 지루한 이 길은 그냥 달리기 좋았다. 지하차도를 통과할 때면 사람들이 모두들 회이팅을 외치는 우렁찬 소리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장한평과 답십리 쪽에 잘 정돈된 대로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름과 다르게 꽤나 현대적인 길거리가 경제대국 한국의 위상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종대학교 앞을 지나면서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종대, 내게는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 곳이다.

27년 전에 대학 면접을 보러 갔다. 사실 이미 대학을 합격한 상태라서 전혀 갈 필요가 없었는데 어머니께서 하도 채근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경제학과 교수가 내게 IMF가 무슨 약자인지 아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I와 M은 아는데 하필 제일 쉬운 F는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대학에 합격했고 라군에 쓸 데가 없어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쓴 곳이라 별로 긴장감이 없어서였는지도 몰랐다. 난 교수에게 I와 M은 아는데 F를 모르겠다면서 international과 monetary를 말하고 말문이 막혔었다.

그랬더니 교수가 잘리다가 영어로 뭔지 아냐고 묻길래 fired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그랬더니 그 교수라는 작가는 내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You are fired!

그때 그 교수는 역정을 내면서 말했었다. 고릴라 같이 큰 머리통에 코끼리처럼 등치가 산만 했던 양반이었는데 머리는 반쯤 벗겨지고 앉아 있는 폼이 엉덩이를 등받이에 바짝 붙였는데도 두꺼운 옷 사이로 뒷산만큼 볼록하게 튀어 나온 배가 술깨나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는데 사실 그때 그 양반에게 쏘아붙이지 못한 게 참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별로 말을 길게 할 필요도 없이 이 정도뿐이었다. 교수라는 게 별 게 아니군요였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국가 부도의 날, 경술국치와 맞먹는 그날의 의미를 고작 IMF의 full name이 무엇인지를 들먹이는 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 같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도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왜 한국이 IMF에게서 달러를 빌려야 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심지어 1998년 당시 세종대 경제학과 그 교수조차도 몰랐다.


2025년 금융권에 종사하는 10만 명 중에서도 정확한 원인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의 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된 것이고 그 원인이 인간의 오만함이었는지를 아는 금융인이 과연 얼마나 있던가?

결국엔 나는 아주 훌륭한 교수님들 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모교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가끔 세종대의 그 양반이 생각나곤 했었다.


모교 교수님들은 학식뿐만 아니라 인격조차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분들에게서 영의로 강의를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꿈을 꿀 자격을 부여받았었다.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줄도 알았다. 국가부도의 암울하고 각박한 현실과 다르게 미래에 대한 부푼 꿈과 희망을 하나의 씨앗처럼 심어줄 정도로 후배 양성을 위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던 분들이었다.

이런 훌륭했던 교수님들에 비해 세종대의 그 양반은 그저 그런 어른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한 면모를 내게 기억으로 남겨줬다. 이 일은 반드시 그분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세종대를 지나자마자 언덕이 시작하고 언덕 뒤에는 살짝 긴 내리막길이 시작했다. 이때가 대략 15km쯤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달릴 준비를 차츰 하기 시작했다. 건대입구쪽으로 좌회전을 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퍼트를 내기 시작했다.

5분 10초대로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렇게 1km쯤을 달렸는데 이상하게 꽤 해 볼 만했다.

그래서 잠실대교를 앞두고서는 조금 더 끌어올렸다. 5분대를 돌파하고 4분 30초대까지 끌어올렸다.

계획보다 힘이 남았다. 기분이 좋았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불편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잠실대교에서 가장 한산했던 가장 왼쪽 차로로 달리면서 사람들을 제쳐 나가기 시작했다. 강한 햇살을 받고 바람도 잔잔했기 때문에 11월 중순치고는 달리기 딱 좋았다.

더구나 잠실대교 남측에서는 길게 내리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다리가 굉장히 가벼워졌다. 혼자 연습할 때 4분 30~40초대는 초반에만 간신히 뽑아낼 수 있는 기록이었는데 18~19km에서 이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잠실역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이제 마지막 1~2km만 남게 되었다. 평지였음에도 내리막길을 내달렸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막판 1km를 남겨놓고는 살짝 힘이 부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스마트워치를 확인해 보니 역시 페이스가 4분 50초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런데 그때쯤 저 앞에 있던 안내요원이 "조금만 더 힘내! 오른쪽으로 돌기만 하면 이제 끝나!"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래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막판에 남은 힘을 모두 쏟아보기로 했다.

안내요원의 말을 믿고 우측으로 돌았지만 FINISH LINE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거의 한강변까지 다다라야 했다.

그래도 저기까지만 뛰면 끝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역시 마라톤은 체력 안배가 승부처다. 그만큼 뭐랄까 스릴이 넘친다고 할까?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처럼, 앞으로 몇 분 뒤의 체력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가진 힘으로 가까운 미래를 대비해 가며 달려 나가는 스포츠인 마라톤, 이것이 바로 그 매력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자신을 체크하고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고 그런 자신을 믿고 의지를 불태우고 계획과 현실을 비교해야 하는 아주 세밀한 스포츠가 바로 마라톤이다.

그리고 여기가 한계인 것 같고 아무리 노역해도 언젠간 한계에 다다를 것 같으면서도 계속 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새로운 기록을 손에 쥐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라톤이다.


결국 하프 코스의 종전 최고기록이었던 2시간 벽을 돌파하고도 8분여가 남았다.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이런 마라톤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억지로 참고 달리지만 결국 언젠간 목적지에 이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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