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주의

by 이각형



관점주의를 제일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다시 한번 관점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 중에서 직관적인 사람은 사회관계를 맺어갈 때마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 마련입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책이라는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저 책, 이런 작가 저런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은 바로 작가가 과연 어떤 눈으로, 어떤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마치 실제 시합을 대비하기 위해 스파링 상대를 대하는 권투선수처럼 우리에게는 책이라는 수단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는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냉혹한 현실에 노출되기 전에 연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에서 전력질주를 하는 법이 없습니다. 본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통해 단련된 사람이야말로 실제적인 문제상황에 봉착했을 때,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일시적일지 몰라도 조금은 더 의연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독서야말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숨겨져 있던 사회적 생리를 우리보다 앞서서 파악했던 손무라는 위인은 이러한 말을 남겼던 겁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그래서 분주하게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습득하게 되는 일상적 습관이 바로 독서입니다.

독서광들은 독서를 통해 활자중독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불현듯 다가올 미래라는 현실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 고민하는 것이 바로 사회가 바라보는 자신의 현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어진 현실 앞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은 바로 나만의 관점주의가 아니라 융합적이고 통합된 관점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유를 통해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관점이 합쳐질 때야 비로소 우리는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모두 평소에 단련되어야 합니다. 입체적인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야만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수천 년을 관통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진통을 마치 지금 우리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이자 통증으로 현실감 있게 체험함으로써 역사라는 심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스펙트럼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 올라갔을 때 취해야 하는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읽은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좋아하는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간접 경험을 쌓아가면서 타인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사회적 안경을 체득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안경을 갖추게 된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도덕과 윤리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며 이를 통해 인격적 함양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모든 이가 그런 덕목을 갖추게 될 때야 비로소 지금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실리주의와 능력주의의 함정을 간파할 겁니다.


그 함정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주체로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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