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삶

by 이각형


태어난 이후의 모든 삶은 죽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듯이 우리네 젊음도 결국엔 지게 마련이다. 지고 나서 푸릇했던 때를 그리워하는 일은 끝을 향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걸 우리는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어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교육할 때 관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살아 있을 때 관 속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이란다.

마찬가지로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겐 언젠가 그곳을 떠나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인생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하나의 문이 닫히기 전에 또 다른 문을 기다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얼마 전 동해 바닷가 앞에 서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퇴직 후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여길 떠나 다른 양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때 나는 얼마나 만족할 수 있을지, 그 만족을 위한 준비는 무엇일지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삶의 끝에서 오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필코 한 번이라도 더 웃고 더 따듯한 마음을 주고받기를 갈망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렀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브런치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펜을 들고 있는 이들에게도 들려준다면 과연 이들은 무엇을 고민하게 될까? 이 얘기인즉슨 글쓰기 플랫폼에 얽매여 있는 이들에게 글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은 왜 하필 하고 많은 사이버 공간에서 왜 하필 이곳에서 터를 잡을 생각했는지 말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근본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야말로 당신들이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필요가 뒤를 받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사람이 돈을 좇는 것은 헛된 망상일지 몰라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바쁜 일이 가실 때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바빴던 것들의 모든 원인이 바로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직한 사람들 중에 함께 고생했던 그들을 찾는
사람들은 빚진 사람들일 때가 많다. 그만큼 얽히고설켜 풀어내야 하는 실타래들이 많다는 뜻이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다. 하다 못해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남긴 글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고독을 응원하는 존재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AI가 발전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간성을 그것이 닮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은 그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 앞에 무릎 꿇은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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