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길게 느껴졌던 하프 마라톤

by 이각형



오늘 저는 오랜만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교보런이라고 불리는 더레이스 서울 21k였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동대문과 군자를 지나 올림픽공원까지 이어지는 코스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대회에 대한 이야기에 치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달리기를 하면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시험받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 이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이런 하루를 겪게 한 데에는 우선 대회 코스 변경이라는 외부 요인이 있었습니다. 즉 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직전에 코스가 갑자기 변경되었습니다.

원래는 군자역에서 우회전해서 세종대 방향으로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군자역에서 아차산역으로 직진하는 코스로 변경되면서 업힐이 추가된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변경된 구간에 업힐이 1개가 아니라 2개가 연달아 이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판단미스로 업힐이 1개만 있는 줄 알았고, 결과적으로 두 번째 업힐에서 그야말로 체력이 고갈되기 직전까지 갈 뻔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바로 우측 상복부 통증이 도지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마지막 두 번의 연습에서 전력질주를 3km쯤 하게 되면 우측 상복부 통증이 시작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3km를 남기고 전력질주를 시작하자고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러나 업힐이 두 번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이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아차산지하차도까지 올라가는 두 번째 업힐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급경사이었습니다. 그 결과 작년 11월 16일 대회 대비 기록을 1분 단축하는 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생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었습니다. 아차산지하차도를 통과하면 급격한 내리막길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보폭을 넓게 하고 엉덩이와 허벅지의 힘으로 내달리면서 순간속도를 3분 50초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르막길에서 손해 본 시간을 어느 정도 상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목표는 사실 1시간 45분이었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3월 내내 준비를 전략적으로 꾸준히 해오기도 했었습니다.

이는 21.1km를 딱 4분 59초 페이스로 뛰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물론 시작하자마자 4분 59초로 달려서 끝까지 달릴 순 없습니다. 그러다가 오버페이스로 퍼지고 맙니다.

그래서 초반 3km는 여유를 두고, 중반에는 일정하게 그리고 마지막은 끌어올리자는 목표를 세웠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초반 3km에서 이미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었습니다.

1. 어제 10km 대회 출전
2. 이로 인해 생긴 몸살기
3. 불충분한 수면 시간

초반 페이스가 흔들렸던 건 이 세 가지 요인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3km를 통과하면서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완주를 하되 작년보다 1분이라도 기록을 단축하자!

결국 이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발을 구르면서 페이스를 계산해 가며 전략을 바꾸고 두 번째 업힐을 간신히 극복한 결과 완주 기록에 1분 단축에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하프 마라톤은 정말 길게 느껴졌습니다. 21km가 이렇게 멀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대회는 오늘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마라톤은 항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그때그때 그에 맞춰 달려야 합니다.

이 순간 저는 단순히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계획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너졌을 때 다시 선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동안 마음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오늘 계획이 틀어진 상황에 따른 유연함을 견지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레이스를 돌아보자면 저는 단순히 달리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우리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핑계를 댈 순 없는 노릇인 만큼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마음속에 여유라는 듬직한 내 편을 심어 두고 멀리 내다보면 우리는 틀림없이 인생을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기록을 포기하고 태도를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계획대로 달리진 못했지만, 멈추지 않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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