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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l 04. 2023

상반기를 마감하며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건 사실 한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 흉폭했던 독재자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는 신탁을 받았겠는가? 눈을 감은 채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젖을 빨며 한 민족을 말살하겠다고 다짐하는 갓난아이가 존재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오이디푸스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신탁을 받아서가 아니라 굴곡진 삶의 국면 어딘가쯤 강포 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의 변호인을 자처한다는 건 아니다. 그의 죄를 용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마음의 병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저 하필이면 삶의 특정 시기에 겪지 않아도 될 특이점을 거쳤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뜻으로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싶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갑작스럽게 초대된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 오른 처지가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도 나도 똑같이 인생이라는 까마득한 시간 앞에서 겁이 잔뜩 오른 존재들이라고 어깨동무를 하며 귓속말로 위로를 건네고 싶을 뿐이다.


이토록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정확한 답, 아니 근사치라도 준 적이 없었다.


심리학이 가능하지 않냐고? 그래서 심리학이 있는 거라고? 심리학은 통제된 실험과 통계의 힘을 빌려 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는 심리학 언저리에서 마음의 지도를 펼쳐놓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과학이 있다고? 맞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인간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첫 주자였다.



과학은 물질과 관계에 놓인 공통점으로 사물을 설명한다. 과학으로 세계를 설명하면 모든 개별성은 사라지고 추상적인 개념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들 개개인은 모두 하나의 소우주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과학이 포기하는 지점에서 윤리가 고개를 치켜든다.


윤리가 있다고? 그래 윤리도 맞다. 윤리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현실적인 마지막 보루이다. 윤리라는 것은 우리가 과학에게서 기대하지 못하는 개별성과 고유성의 가치로 꽃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이라는 것은 가장 높은 순도로 정제해 휘발성이 높은 향수와 같아서, 만일 매개적인 도덕으로 미덕을 강제할 경우 잔향도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지고 마는 숭고한 정신 그 자체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라져 버린 잔향의 끝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이에 더해 세상에서 윤리적 심판관을 맡은 이들은 이러한 선의 숭고한 속성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윤리의 손길을 벗어난 인류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주자로 예술이 일어선다.


예술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당연히 예술도 맞다. 다만 예술은 즐기는 척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철학사와 예술사 책을 양쪽에 펼쳐 놓고 공통점을 찾으라고 요구할 때 우리는 무엇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사회학은 어떨까? 사회학도 평균과 분산이 없으면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무엇인가? 과연 어떤 학문이 우리에게 진리의 빛을 밝힐 수 있단 말인가?


사물의 집합인 세계에서 사물은 우리에게 언제나 문제적이다. 사물이 우리와 동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물을 인식한다는 건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 멀리 검은 물체가 보일 때 그 앞까지 다가서기 전에 우리는 성당의 첨탑이라고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오직 플라톤만이 우리가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백함으로써 우리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 무언가를 알고자 하며 알고자 하는 필요성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필요성은 누가 만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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