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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Jul 29. 2023

미쳐버릴 것 같은 날씨에 미쳐버릴 만한 산행

북한산 백운대



오후 8시 25분 현재 섭씨 29.6도입니다.

오늘 북한산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오전 9시 10분쯤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글거리는 날씨였겠습니까?

사실 오늘의 등산코스는 14 성문이었습니다. 거진 한 달 만에 산에 왔으니 한번 제대로 놀다가 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북한산이니 심심하게 백운대나 찍고 가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래서 14 성문으로 마음먹고선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치자마자 왼쪽으로 틀어서 서암문을 향해 힘차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건 말도 안 되는 날씨였습니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오늘 같은 날에는 산행을 하면 안 되는 날이었습니다.

고작 700미터도 안 되는 산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상에 오른다 한들 평지와 기온 차이가 7~10도 차이밖에 안 나기 때문에 북한산은 오늘 같은 날씨엔 가면 안 되는 산이었습니다.

반면에 지리산은 해발고도 2천 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지상과의 온도 차이가 최대 20도까지 나게 되어 있어 정상쯤 이르면 선선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7월 초라고 해도 지리산에 갈 때에는 방한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지상과 온도 차이가 20도까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8년 6월 1일 날 천왕봉에 올랐을 때 추워서 발발발 떨었습니다. 아니, 천왕봉에 이르기도 전에 무슨 대피소에선가 컵라면을 먹으려고 했을 때부터 너무 추워서 몸이 다 얼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산 700미터도 안 되는 산이다 보니 온도 차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예전 같았으면 서암문 쪽에 이르면 아 이제 몸 풀렸으니깐 본격적으로 한번 가보자, 라며 마음을 되새기고 새 출발 하듯이 올라갔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서암문이 그토록 멀게 느껴지고, 원효봉이 그토록 높게, 백운봉암문과 백운대가 이렇게 힘든 코스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주요 포인트마다 얼마나 걸렸는지 스샷을 찍어 기록을 대신하곤 했을 텐데요. 이날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늘을 찾아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앉아 있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14 성문을 포기하고 백운대로 행선지를 바꿔 버렸습니다.

아무튼 억지로 올라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돌아가면 버릇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백운봉암문으로 오르던 중 갑자기 머릿속으로 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백운대로 가는 길인 일방통행 길이 생각났습니다.

보통은 그 길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나 기다리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데 그게 또 걱정이 된 것입니다.

내려오는 등산객이 없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착안된 게 바로 현재 그 길에도 인적이 드문 만큼 백운대에도 사람이 별로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혼잣말로 중얼거린 걸 마침 지나가던 하산 중인 분이 들었는지, 위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올라가면 시원~합니다,라고 기운을 북돋아 주시는 바람에 다시 코를 박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여러 차례 이를 악물고 악전고투를 벌인 덕분에 백운대 마당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저 멀리 아파트가 성냥갑처럼 힘 없이 서 있는 도심으로 강태공처럼 시선을 던져 놓고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구름이 흐르는 대로 마음을 흘려보냈습니다.

하산길도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던지, 평소 하산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하던 저조차도 정말 땀으로 목욕하듯이 내려왔습니다.

물론 중간에는 물가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차갑던 계곡물도 미지근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오늘은 폭염경보가 내려질 만한 날이었던 겁니다.

미처버릴 날씨에 미처버릴 산행이라는 제목을 다는 데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만큼, 그만큼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고작 8km 산행을 거의 6시간 만에 끝냈으니 이 만한 고행도 없을 거라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런 날엔 등산은 기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등산 가자,라는 말에 웬만하면 같이 따라나설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저로서도 이런 날은 산행금지령을 스스로에게 내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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