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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ug 01. 2023

너무도 뜨거워진 지구야, 미안하다.

지구공학은 지구를 구할 자격이 없는가.


소나기, 열대성 강우가 쏟아지기 전 습기로 가득 찬 길을 뚫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비록 지난 토요일에 비해 기온이 2-3도가량 낮았지만 여전히 후덥지근한 날씨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럴 때 등산을 취미로 삼았다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 되곤 한다. 아무리 이런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도 사실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은 모두 등산에 힘쓴 덕분이었다.


"팀장님, 왜 그렇게 시커멓게 탔어요? 주말에 뭐 하셨어요?"


자카르타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 녀석이 같은 사무실로 온 지 약 4주가 지났다. 등치가 큰 곰돌이 같은 외모의 듬직한 녀석이 나를 호위하듯이 옆에서 걷더니 해맑은 미소와 함께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옆눈길로 그 녀석을 힐끔힐끔 보면서, 아 나 토요일에 산에 갔다가 죽을 뻔했어,라는 말로 너스레를 떨었더니 덩달아 키득키득 숨어서 웃는 모습이 큰 덩치와 여간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었다.


주문을 하고 앉아 있었더니 박 부장님께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엘팀장, 어디야? 나도 지금 갈게."


"아, 부장님 여기 거기예요."


사무실을 나오기 전에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씀드렸지만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한사코 거절했던 박 부장님이 급한 불이 급하게 꺼진 모양이었다.


50대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몇 가지 불러드렸더니 두 번째로 말한 메뉴에서 "그래 그거"라고 답변해 주셔서 길게 이어질 것만 같던 통화가 생각보다 빨리 끊어졌다.  


남자 셋이서, 그것도 직급별로 한 명씩 모였으니 식사도 속전속결이었다. 그래도 난 그 사이 공깃밥을 두 개나 해치웠다.


그런 내 모습은 주변 식당의 이모님들에게 눈도장이 찍혀 미리 말하기 전에 내 앞엔 은색 공기가 두 개씩 놓이곤 했다. 이렇게 삐쩍 마른 남자가 밥을 두 공기씩이나 먹어치우니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기도 몸이 후덥지근해지기도 했다. 나오자마 붙어 있는 건물에 카페가 있어 점심을 사주신 박 부장님을 대신해 시원한 커피를 들고 나왔다.


아무리 날이 뜨거워도 사무실로 직행하기엔 다들 섭섭한 모양인지 정자의 처마 밑에 동그렇게 앉아 날씨를 탓하기 시작했다.


"야, 진짜 덥다. 이래서 어떡하냐?"


그러더니 박 부장님이 내 얼굴을 쓰윽 훑어보더니 곰돌이 녀석과 똑같이 물어보셨다.


"엘팀장, 어쩌다가 그렇게 탔어?"


"아 토요일에 북한산 갔다가 죽을 뻔했어요."


"아니, 이런 날씨에 산에 갔단 말이야? 조심해 이제. 너도 이제 중년이야."


"네.ㅎㅎㅎ"


그러더니 이내 날씨를 탓하더니 한숨을 길게 내뱉으셨다. 아마도 지난 세월에 대한 푸념이 양념처럼 섞인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더니 곰돌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 희한하게도 자카르타가 서울보다 더 시원해요."


곰돌이랑 같이 자카르타에 있었기 때문에 자카르타의 날씨가 서울보다 시원하다는 최근 뉴스가 내게는 너무 큰 위험으로 느껴졌는지 깜짝 놀라면서 곰돌이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뭐? 진짜야? 거기 적도 근처잖아?"


"네. 자카르타는 요새 이렇지 않았어요."


곰돌이가 약 4주 전에 자카르타에 있다가 돌아왔으니 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재차 확인하는 건 제발 이런 일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강한 말투에 반영된 셈이었다.


사실 나는 얼마 전 기사를 보고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체감했었다. 그러한 절망감을 스스로 삼켜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저는 희망을 잃었어요.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박 부장님이 나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크게 뜨시고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지는 시기가 대략 12만 km를 주행한 뒤부터래요. 그전까지는 내연기관 차량이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보통 450kg쯤 한대요. 그런데 배터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광물이 4.5톤이래요."


"그러면 그 광물을 캐기 위해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얘기야?"


"네, 거기에다가 4.5톤의 광물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정제하는 과정까지 더해지면 이미 출고시점에서부터 내연기관보다 훨씬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거래요."


"그러면 어떤 에너지가 대안이야?"


"음 수소와 핵융합이 있긴 해요. 그런데 아직 수소는 안정성과 고비용이 문제이고요. 핵융합 기술은 이제 초기 개발단계나 마찬가지래요."


"수소차 있잖아?"


"음, 그 수소차는 수소연료전지차량이어서 내연기관이 석유를 직접 발화시켜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라, 수소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전기를 이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는 수소분해과정만 추가될 뿐이지 전기차와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수소를 포집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대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이 이젠 없는 거야?"


"사실 있긴 있어요. 그런데 지구공학이라서 다들 얘기를 듣고선 꺼린대요."


"그게 무슨 얘긴데?"


"지구표면에서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것이 있어요. 그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는 영향도 상당히 큰데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어요."


"그게 뭔데?"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것 중에 바다를 빼고 제일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숲이에요. 바다는 파란색인데 반해서 숲은 어두운 녹색이에요. 어두울수록 태양에너지를 더 흡수하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지구 온도를 높이는,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게 바로 역설적으로 나무예요."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도 하잖아."


"네, 그런데 하지만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양이 더 커요."


"그러면 방법이 없는 거야?"


"아뇨. 있긴 있어요. 뉴욕 브루클린엔가 천재 과학자 8명이 모인 어떤 연구기관이 있는데요. 그들이 제안한 방법이 세 가지나 돼요. 그런데 그들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지만 환경론자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난색을 표했대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공학을 이용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면서요."


"그 방법이 뭔데?"


"이건 두 가지 사건에서 착안한 과학적인 방법이긴 해요. 한 가지 사건은 2001년 911 사태 때 뉴욕공항이 3일 동안 비행을 금지키셨는데요. 3일 동안 뉴욕공항 근처의 기온이 0.3도가 올랐대요. 왜냐하면 비행기가 뜨지 않으니깐 비행운이 생기지 않아서 태양이 지표면에 도달하는 양이 많아져서 그랬대요.


그리고 1994년엔가 인도네시아에서 큰 화산 폭발이 있고 난 뒤 6개월 동안 제트기류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다닌 화산재가 성층권에서 햇빛을 막아내는 역할을 한 덕분에 1994년 이후로 한동안 지구의 온도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졌었어요."


"그래서 그게 뭘 의미해?"


"결국 지구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을 줄이면 지구가 뜨거워지는 걸 늦추고 막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화산재 같은 먼지를 대기 중에 높이 올려 보내서 지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양을 줄이는 방법인데요.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충분한 양의 먼지를 생산하고 있어요. 그 먼지가 나오는 굴뚝을 아주아주 높이 설계해서 하늘 높이 올라가게 만들면 상승기류를 타고 성층권까지 올려 보낼 수가 있어요. 그러면 1994년엔가 터진 인도네시아 화산의 대폭발 효과를 똑같이 얻을 수가 있대요."


"그 먼지가 지금도 나오고 있다고? 어디서?"


"네. 그 먼지는 발전소에서 지금도 나오고 있어요. 발전소에서는 전기를 생산하면서 황화수소를 배출하고 있대요. 그 황화수소가 바로 먼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진짜야 그거?"


"네. 그 연구소에 모인 8명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래요. 그 연구소 입구에 들어서면 어떤 작은 탑 같은 게 있는데요. 그게 뭐냐면 레이저로 날벌레의 날갯짓이 1초당 몇 번 펄럭거리는지를 계산해서 모기인지 파리인지를 구분할 수 있대요. 그래서 모기라고 판명이 되면 레이저를 쏴서 죽일 수 있대요. 연구소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발명품이 바로 그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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