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각형 Aug 05. 2023

이루마 좋아

새벽녘의 어스름

인터넷 어디선가 가저온 사진. 한때는 이렇게 새벽 하늘을 만 피트 상공에서 바로보는 일이 하나의.일과였던 적이 있었는데...



글을 쓸 때 단지 이성의 작용으로만 쓰는 것보다는 외부의 감각적인 자극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어떤 생각 속으로 휩쓸릴 때 펜을 드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이런 일은 마치 술잔을 술을 반씩만 담아 마시다가 술에 얼큰히 취했을 땐 잔이 넘치도록 따르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저절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일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쓰기 위해 읽는다는 말을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치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읽기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라든가, 쓰기를 애써 거창하게 포장하기 위해 읽기까지 끌어들인 것 같은 식의 작의적인 의미를 덧입히는 것이라면 나는 쓰기 위해 읽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펜을 드는 걸까?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성격이어서 외부의 자극에 굉장히 잘 반응하는 편이다. 쉽게 말하면 어떤 노래를 듣거나 그림이나 장면을 보고 떠오른 이미지라든가 감상에 젖어 있다가 그것을 두고두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걸 얘기해야겠다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게 되면 툭 튀어나오는 것들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놓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쓸 때, 가슴속에 튀어나오려고 하는 뭔가를 힘으로 억누를 수 없을 때 쓰는 것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로 말한 고백이며,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만년필로 쓰는 진정한 자신의 글이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보니 나는 쓰기 위해 읽는 것이 조금은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신에 읽기를 통해 어떤 자극을 받아 글을 쓰는 경험을 수차례 했던 과거의 어느 시기가 있었고, 따라서 비슷한 경험을 거쳐가는 이들에게 굳이 반대할 의사는 없으며 오히려 동일한 일의 경험자로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장점이 있고 반대로 또 어떤 맹점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을 통해 그들의 노력에 동화되곤 한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서로 섞이지 않고 그대로 경계를 이룬 채 저 멀리 바다로 흘러가듯이 여기서 잠시 여러 개의 짧은 선을 긋고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로 넘어가자. 대신에 이 구분은 우열이 아니라 단지 다양함을 위한 시도라는 점을 이해하고 넘어서자.

오늘 아침은 일찍 시작했다. 어젯밤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와 한 몸이 된 뒤로 눈을 뜨지 못한 채 새벽을 깨우게 된 것이다.

여명의 영롱한 빛을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잔잔한 음악이 필요해졌고 그중에서도 길게 늘어지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아니라 물방울 소리처럼 또렷한 음색이 특징인 피아노 연주곡으로 저절로 손이 갔다.

리스트라든가 쇼팽과 같은 고전음악 대가의 곡을 듣기에는 새벽의 어스름이 고전음악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에 짓눌러 버릴 것만 같았다. 새벽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그 무게에 힘을 빼고 싶었다.

여름의 무더위도 버거운데 새벽의 희미한 여명을 납작해진 조각케이크처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요즈음 연서를 쓸 때 이루마의 연주곡을 듣는다. 연서를 쓰면서 이루마의 곡을 듣고 있다고 밝히면 "이루마 좋아",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수줍은 듯 조용히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오늘 새벽 그러한 상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루마를 듣고 있었다. 이루마를 듣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였다.

이루마는 왠지 약간의 가벼운 우울감을 감기처럼 달고 있을 때 들으면 동질감을 느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은근하고 차분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이루마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우울감이 평소 예술적 영감의 베이스를 이루는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울이라는 독소가 온몸에 퍼지기 전 잠깐 밝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 상태로 지어낸 음악들은 어느 정도의 빛깔로 반짝이기도 하며, 우울이 가슴 한편에 뭉쳐진 상태로 하나의 힘을 발휘할 때 지은 곡들은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번잡한 도시의 길을 나 홀로 우산 아래에서 걸고 있는 것만 같다.

이루마의 곡은 이상하게도 여백이 많다. 음악이 꽉 채워진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일부러 빈자리를 마련해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의 곡은 이런 공간에서 참 잘 어울린다.

보기만 해도 차가운 느낌이 드는 모던한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층고가 높은 데다가 군데군데 뜯겨나간 흔적이 있는 시멘트벽의 마감이 거친 덕분에 인위적인 느낌이 덜하지만 하얀색 페인트로 덧칠해진 단단한 벽 위로 던진 나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튕겨져 나올 법한 그런 카페.

그런 카페에 앉아 들릴 듯 말 듯하게 이루마의 Fairy tale이 하나의 공간처럼 흘러나오고 있으면, 풍미가 그윽하고 향긋한 블렌딩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저 멀리 시선을 던지고선 넋을 놓고 싶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앉아 있고 싶다.

이루마를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그렇게 우리 피곤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가요.

작가의 이전글 구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