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만리길을 보지 말고...오직 만리 하늘을 보라
오늘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생일이다. 2월 9일.
요즈음 먹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날처럼 뒤숭숭한 마음으로 묵묵히 시간이 쌓여가는 통에 복잡한 글을 읽기에 적당치 않았다. 덕분에 마음을 움직여 볼 요량으로 적당한 소설을 골라 읽고자 했더니 저절로 손이 소세키의 문학으로 향했다.
총 열네 권의 작품 중 아무거나 골라잡아 읽다 보니 어쩐 일인지 소세키의 품 안에서 문을 읽고 산시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뒤 벌써 세 번째 작품인 우미인초에 빠져 있다. 벌써 5년 전에 그의 작품을 모조리 다 읽은 것도 모자라 좋은 것들은 서너 번씩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의 이야기들은 무심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세심한 표현이 넘쳐나는 그만의 인정 넘치는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세계에 몰입한 채 흐트러진 마음을 맡기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세상과 차단된 투명한 장막 안에서 한가함에 여유롭게 빠져드는 것만 같다.
그 순간에는 그와 단둘이 남포등을 켜 놓은 작은 방 안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기만 하다. 그러다 오늘도 우미인초를 읽고 있는데 불현듯 오늘이 그의 생일이라는 걸 떠올리면서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특히나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게 만드는 주옥같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살아 있다는 정도의 자각으로 살아서 받아야 할 애매한 번민을 버리는 것은,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벗어나 하늘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집착을 초월한 활기다. 고금을 공허하게 하고 동서의 자리를 다한 세계의 바깥에 한쪽 발을 들여놓아야만...... 그렇지 않다면 화석이 되고 싶다. 빨간색도 흡수하고 파란색도 흡수하고 노란색과 보라색까지 다 흡수하여 원래의 오색으로 되돌릴 줄 모르는 새까만 화석이 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죽어보고 싶다.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덤 이쪽의 모든 다툼은 살 한 겹의 담을 사이에 둔 업보로, 말라비틀어진 해골에 불필요한 인정이라는 기름을 부어 쓸데없는 시체에게 밤새 춤을 추게 하는 골계다. 아득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득한 나라를 그리워하리라."
우미인초 P27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어젯밤 읽을 뻔한 대목을 오늘 낮에 읽어보니 오늘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시야가 번잡할 때 읽었다면 틀림없이 음미하지도 못한 채 겨워냈을 만한 문장이었다.
글을 길게 이어나갈 기운이 별로 없다. 붓을 들고 있는 손에서 기운이 슬며시 빠져나간 것만 같다.
그래도 용케도 소세키의 생일날 그의 작품을 읽으며 위안을 받은 덕에 그를 기리는 글을 남겼으니 이만하면 된 것 아니겠냐는 볼멘소리는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