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점차 몸에 해로운 일들은 자제하려고 하듯이,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말수를 줄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뜨거운 음식에 데었다고 해서 회를 먹을 때도 후후 불어서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넘기기에는 아니다 싶은 것들이 있을 때 말문을 열게 된다. 오늘이 바로 그런 하루가 아닐까 싶다.
윗사람이 휴가인 틈을 타서 업무 시간에 종종 여러 가지 뉴스나 기삿거리를 보곤 한다. 그중에서도 계절이 계절인 만큼 스포츠 관련 소식을 눈여겨보고 있는 편이다.
오늘은 프로야구의 FA 계약과 관련된 제목이 눈에 띄었다. 들어가서 본문을 보기도 전에 대문에 걸린 사진 하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이 글의 제목인 "워크에식"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글씨로 적혀 있는 사진이었다. 워크에식을 보자마자 예식의 오타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신조어인가 싶어서 본문을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선수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몸 관리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워크에식이 부족하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 머리를 탁 치고 말았다. 영어로는 두 개의 단어인 Work ethic을 마치 하나의 단어인 것처럼 소리 나는 대로마음껏 붙여 쓴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출판물의 경우 보통 외국어를 적당한 국어로 번역할 수 없거나 외국어를 있는 그대로 써야 그 의미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고심한 끝에서야 외국어를 발음되는 대로 한글로 기재하고 작은 글씨체로 외국어를 병기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외국어가 있는 그대로 인쇄된 글을 읽을 때에는 번역가와 교정사 그리고 편집자의 고심한 흔적이 보이기 마련이며 책을 편집한 지성집단들에 대한 신뢰도를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교정이라든가 지성적 성찰 또는 이성적 반성이라는 필터가 없는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언어파괴적 현상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리스어 로고스 Logos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생각, 언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과 언어를 동일체로 간주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본인이 스스로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우리가 발화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다. 이러한 언어활동은 모두 타인에게 말하기 전에 이미 자신에게 말한 것들이었다.
나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은 타인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은밀한 대화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가 가진 세계관을 대변하고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언어활동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 가장 근접해질 수 있다. 발현된 현상의 이면을 통해 형상학을 연구했던 사람들은 밥 먹듯이 하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테다.
아무리 SNS에서는 언어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눈엣가시 같은 이 표현이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쇼츠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 영상도 제목에 붙인 한 단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안벅지"라는 표현이 거침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운동을 통해 허벅지 안쪽의 군살을 제거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허벅지 안쪽을 안벅지라고 표현하는 그 용맹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언어를 파괴하는 일이 대수롭지도 않은 듯이 만연해 있는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안벅지란 말이냐. 허벅안도 아니고 안벅지라면 옆벅지, 앞벅지, 뒤벅지도 탄생시킬 만한 위인이었다.
금일을 금요일로, 시발점은 욕을 하는 줄 알 정도로 어휘력 자체가 현격하게 부족해진 한국의 20대 이하 젊은이들이 상당히 아쉽다. 유튜브나 다른 SNS을 통해 인기와 관심 그리고 허영심을 채우는 데 열심인 반면 내적인 성장을 위한 시간은 점점 짧아만 가는 그들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