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국물 낼 만큼만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찬장에서 손바닥만 한 다시마 두 장을 꺼내고, 큼지막한 마른 멸치를 한 웅큼 집어든다.
큰 냄비에 물을 가득 채워 다시마를 먼저 담근다.
멸치는 대충 넣지 않는다.
머리를 떼고, 몸통을 반으로 가르며 내장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내장을 그대로 두면 쓴맛이 배어들기에 손이 가더라도 꼭 해줘야 한다.
다듬은 멸치는 약한 불에서 정성스레 볶아준다.
비린내가 사라지고 구수한 향이 올라올 때, 그제야 냄비 속으로 들어간다.
물이 끓어오르자마자 다시마는 건져낸다.
오래 두면 점액질이 퍼지고 국물이 텁텁해진다.
불을 줄여 은근하게 끓여주면 된다.
뽀골뽀골 거품이 조심스레 올라오는 정도의 불.
이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준다.
두어 시간 그대로 내버려두면 국물은 천천히 깊어지고, 집 안은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찬다.
결국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세게 틀어야 한다.
육수가 완성되면, 시골에서 건네받은 국간장을 푼다.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향이 배어드는 순간, 집안은 잔칫날의 냄새로 가득찬다.
지단을 부치고 채 썬다. 당근과 애호박도 곱게 채를 내어 살짝 볶아둔다.
다진 파와 마늘에 간장을 부어 양념장을 만들고, 고춧가루 한 숟가락을 크게 얹는다.
면은 따로 삶아 찬물에 여러 번 헹군다.
손끝의 미끌거림이 사라지고 탱탱한 면발만 남을 때까지 반복한다.
그릇에 면을 담고, 뜨끈한 육수를 부어내면 잔치국수 한 그릇이 완성된다.
김치냉장고 속 신김치까지 곁들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식탁 위에 둘러앉은 가족들.
아이들은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엄지를 척 올린다.
아내는 에어컨 바람에 추워졌다며 투덜대며 국물부터 떠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속이 뜨끈해지는 동시에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한여름,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틀어 놓고,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치국수를 올린다.
차가운 바람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
한여름에 겨울을 느끼는 사치스러운 모습.
값비싼 레스토랑의 한 끼가 아닌,
우리 집 거실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
나는 시계를 모른다.
아내는 가방을 모른다.
아니, 실은 우리도 안다.
반짝이는 금속이 가진 값어치, 손목 위에서 시간을 과시하는 무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명품의 화려함. 모두 욕심낼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재료를 아낌없이 넣으며, 20분의 식사를 위해 두어시간의 정성을 들인다.
기다림 끝에 나온 뜨끈한 한 그릇을 가족과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누리는 진정한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