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두고 늘 다른 입장을 보였다.
아내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스마트폰은 중독이 무서운건 알지?
한 번 습관이 되면 공부는 뒷전이 될 수 있어.
지금 습관을 잘 잡아줘야 나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아내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이의 마음이 먼저 보였다.
나 역시 어릴 적 공부보다 노는 게 더 즐거웠다.
그래서 아이가 얼마나 스마트폰을 하고 싶어 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공통된 주제를 찾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할지도 알 것 같았다.
옆자리 친구가 즐겁게 화면 속 세상을 바라보는데, 내 아이만 곁눈질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싶었다.
서로의 의견은 엇갈렸지만, 그렇다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긴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사실은 논쟁에 가까웠다.
“당장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지금 놓치면 나중에 큰일이야.”
“하지만 너무 막으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울 걸? 아이도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필요해.”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그렇게 몇 번이고 부딪히다 지쳐갈 무렵에야 겨우 합의에 도달했다.
하루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관리와 설정은 내가 맡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아내는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 아니냐'고 했고,
아이들은 '시간이 너무 적다'며 불평했다.
그나마 딸은 금세 수긍했지만 아들은 달랐다.
매번 불만을 터뜨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이상했다.
그래서 사용 기록을 확인했다.
제한은 하루 50분이었는데, 기록에는 평균 세 시간.
조용히 아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말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우회하는 방법 알려줬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허탈함과 답답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이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이 겹쳐졌다.
나 역시 공부한다고 둘러대며 친구들과 몰래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피는 못 속이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거짓과 기만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아이의 성장을 해치게 되니까.
나는 단호하게 혼냈다.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아팠지만, 부모로서 어쩔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부부 사이에 비밀을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이 마음은 이해해야지. 우리 다시 방법을 생각해보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렇게 원칙과 이해 사이를 오가는 일의 연속임을 다시 실감했다.
부모로써의 우리는 항상 어설픈 초보일 수밖에 없다.
처음 겪는 상황 앞에서 당황하고, 때로는 실수를 한다.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늘 불완전하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배우고, 주변의 조언을 참고하고, 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길을 찾아간다.
결국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답을 아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 일이 벌써 2년 전이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들이 자연스럽게 톡을 보내온다.
“아빠, 친구들이랑 놀러왔는데 시간 좀 늘려주세요.”
“학원 쉬는 시간에 잠깐만 쓸게요.”
“검색할 게 있는데, 챗GPT로 물어볼 게 있어요.”
예전 같으면 억울함과 불만을 쏟아내던 아들이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허락을 구하는 메시지’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소통 방식이 되었다.
아이는 필요할 때마다 솔직하게 요청하고, 나는 시간을 조금씩 풀어준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제어의 대상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를 이어주는 대화의 창구가 되었다.
물론 가끔은 이런 메시지도 온다.
“아빠, 용돈 좀 주세요.”
그럴 때면 미소 대신,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이고... 내 용돈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