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이다.
자비를 베푸는 이유는
자비르ㄹ 받고자 함이 아니다.
사랑ㅇ은 힘을 쥐어야 하지만,
자비는 히ㅁ을 풀어야 한다.
사랑과 자비.
언뜻보면 결이 맞는 단어같다.
그러나 본질은 아예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랑과 자비'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해 봤는데 밋밋하다.
맹물과도 같은 글. 갈증 속의 사람에게는 시원하게 다가가겠지만 단지 그 뿐인 글.
짧은 글에서 뭘 바꿀 수 있을까?
다시 타이핑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 때,
불완전한 손끝이 만들어낸 하나의 모양.
'자비르ㄹ'
자비를 온전하게 나타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불완전함에서 튀어나왔다.
언어든 마음이든 언제나 조금씩 깨지게 되는 단어들.
사랑에 힘을 더하고,
자비에서 힘을 빼주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꾸는 순간,
제목이 바뀌었다.
'파자(破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