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시 피어난다
세상의 모든 일을 참아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다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 믿었다.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
나 역시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순적이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가족을 멀리했다.
돈을 벌고자 부업을 시작했고 회사 일이 끝나도 집이 아닌 업장으로 향했다.
기계처럼 살았다.
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기계 부품이었다.
감정 따위는 사치였다.
인생이란,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견디고 또 견뎠다.
진득한 피로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이었고, 회사는 나를 갉아먹는 곳이었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이 터져버렸다.
눈앞은 캄캄했고, 삶에 대한 의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터지기 전에도 삶에 대한 의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못난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정신은 깎이고,
몸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한 최후의 생각은.
'60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
그때쯤이면 애들도 크고, 금전적인 문제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그래, 그때까지만이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기한이 정해진 삶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마치 전역일을 기다리는 군인의 마음처럼...
억지로라도 잠을 자고,
따뜻한 것을 먹고,
가끔은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지만,
부모님의 배려와 아내와 아이들의 애정, 상담과 약의 도움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지금도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떠내려 보낼 것은 보내고,
정말 내가 가져가야 할 것들만 조심스레 챙긴다.
유한한 삶에 대한 기다림도, 이제는 없다.
그 시절을 기억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
아니, 너무 많은 것이 적혀서 새까매진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