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글 보고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기업들이 자주 보인다. 보고서는 중요하다. 잘 만들어진 보고서는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보고서 작성자는 보고서를 써보면서 보고할 내용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형식에 치우친 보고서는 비효율적이다. 외국의 사례는 모르겠지만 정부기관, 공기업, 준공기업 등에서는 보고서의 형식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나는 나름 수평적 문화로 유명했던 회사와 전형적인 관료주의 성향의 한국 문화를 가진 두 회사를 모두 경험해보았다. 전자의 회사는 형식보다는 어떠한 수단이든 빠른 보고를 중요시하고 일에만 집중하는 문화를 만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문화를 가진 회사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정반대 성격인 관료주의 성향의 문화를 가진 회사의 문제점이 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관료주의 문화가 정말 나쁜 것일까? 관료주의 문화를 좋게 말하면 체계가 잘 잡혀있고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다. 관료주의 문화에도 장점은 있지만 세상이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느껴진다.
관료주의가 나쁜 첫 번째 이유는 일하는 우선순위를 망가뜨린다. 부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회사 업무 순서의 1순위는 무조건 '고객'이 돼야 한다. 회사의 목표는 매출과 이익의 극대화이고 매출과 이익은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임원진의 보고 명령이 떨어지면 고객 대응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고객의 목소리보다 내 승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임원진의 목소리가 더욱 무섭기 때문이다. 내부 행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임원들에게 이쁨을 받는 것이 승진에는 좋을지 모르나 진짜 나의 월급을 주는 고객과는 점점 멀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변화 대응이 느려진다. 관료주의 문화를 가진 회사의 사람들도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답은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진 못한다. 때로는 변화를 위해 큰 리스크도 져야 하는데 관료주의 문화에서는 실패자에 대한 책임이 너무 가혹하다. 또한 큰 마음을 먹고 변화를 행하려 하는데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 너무 많다. 신중한 결정은 중요하지만 내부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면 이미 실행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회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CEO를 비롯한 임원진이 변해야 한다. 아무리 실무진에서 내부 행정에 지나치게 시간을 쏟는다는 불만이 있더라도 CEO와 임원진이 느끼지 못하는 한 별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 CEO와 임원진은 권위를 내려놓고 실무진들과도 이메일과 메신저 혹은 직접 소통을 통해 행정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실무진들이 빠르게 행동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더욱 늘려 줘야 한다.
실무진들은 시간 가계부를 써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매일 퇴근 전 5분만 투자하여 오늘 내가 무엇을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였는지 작성한 후 일주일, 한 다리를 분석해본다. 고객 혹은 미래 사업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내부 행정 작업 시간보다 현저히 낮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임원진에게 조직 문화 혁신에 대해 설득할 때도 시간 가계부를 통한 데이터를 제시한다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물론 임원진이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결국 관료주의 문화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고객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항상 형식에 치우쳐 본질을 잊지는 않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