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류이치!

굿바이 류이치

by 장준영

https://www.youtube.com/watch?v=gSuHD4jzNJ0&ab_channel=T.Arai

NISI20230717_0001316915_web.jpg?rnd=20230717090421 사진= 피크닉, 위즈덤하우스

한국 사람들은 골수에 인이 박혀있는‘한’의 감정으로 인해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만해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일본 놈’이라는 표현을 가끔 무의식적으로 한다.


한국이 일본을 본격적으로 싫어하게 된 배경엔 언제 부터일까? 왜라고 불리었던 삼국시대 때부터? 아니면 고려 말 전국의 각 해안지역에 출몰한 왜구의 등장으로부터? 잘은 모르지만 아마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일 것이다.


내가 알기론 쌍시옷이 들어간 된소리가 이 이후부터 생겼다고 한다. 이후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19세기 말부터 노골적으로 침략한 일본인들에 의해 치욕과 굴욕의 세월을 맞이했고 우린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독립을 맞이했다. 일본에 대한 증오의 DNA가 뼈로 유전된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일본을 좋게 보지는 않는다. 한나라의 수장이 유대인들한테 사과했던 독일과 달리 일본의 총리들은 때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는 둥 반성은커녕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배우 기타노 타케시 조차도 혐한인사 인 것을 알게 되어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른을 좋아한다. 자기철학이 확고한 사람, 그러나 어느 곳에 깊이 빠져있지 않고 인류애적인 마음을 가지며 국가, 종교, 인종을 초월한 사람.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무늬가 짙어져 화문석을 닮은 사람.


류이치 사카모토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후지와라 신야도 그렇고 자국 내에서 그 정도 위치에 선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과 발언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통하여 과거 군국주의 시대를 반성하였고 후지와라 신야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자신의 차에 생수를 가득 싣고 현장에서 봉사를 했고 당시 대처를 잘 하지 못한 일본의 관료들에게 쓴 소리를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아베신조 정권이 강하게 밀고 나갔던 집단 자위권과 평화 헌법 개정에 대해 시위에 참여했고 핵 처리 시설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반핵운동에도 앞장섰다.


작년 12월 11일, 그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온라인 콘서트가 열렸다. 그는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덤덤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피아노 건반에 올린 야윈 손을 스스로 놓지 않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주었다. 나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그의 숭고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음악은 때로 우리를 구원한다.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승화시켜주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나거나 특히 괴로울 때 나쁜 감정들을 제거해준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구원을 받았다. 특히 슬프거나 괴로울 때 나쁜 감정들을 제거해 주었다. 덕분에 첼로를 배우고 싶었고 가끔 글을 쓰고 싶었다. 마치 그가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얼마 전 그가 죽었다. 일본을 넘어 대중음악과 영화음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류이치. 음악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세상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다.


생전에 그는 화려한 애도는 필요 없다고 했다. 세상은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는 순진한 아이와 같은 미소를 지닌 그. 그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다. 이제는 그를 잘 보내주고 싶다.


굿바이 류이치!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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