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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Feb 19. 2024

공모전 탈락과 홈메이드 치킨

https://www.youtube.com/watch?v=hKRDnQQRhfA





얼마 전 A한테 전화가 왔다. 

1년 전 이혼한 A는 근래 새로 사귄 여자친구랑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지만,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는 자책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A는 나에게 저녁 번개를 제안했지만 시나리오 공모전에 떨어진 직후라서 누군가를 만나기는 싫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어. 몰입을 한 덕분에 겨울을 무사히 넘겼어." 

"여자친구는?"

"있겠냐?" 

"틴더는?"

"하겠냐?" 

"술은?"

"요새 친구도 안 만나서 마실 일이 없어." 

"그럼 밥은? 아직도 하루에 한 끼만 먹어?"

"응. 근데 조금씩 점심 먹으려고 해." 

"외롭지 않아?" 

"응 괜찮아. 근데 심심하긴 해. " 

"도인이여? ㅋㅋ.. 무슨 낙으로 살아? 몸에서 사리 안 나오냐?" 

"그럼 소개해 주던가!" 

"미쳤냐? 예전에 그 꼴 나게?"

"하긴...ㅋㅋ 미안하다고 전해줘라" 

"이제 이혼해서 그런 말 못 한다 ㅋㅋ" 


통화를 끊고선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해봤다. 나는 정말 외롭지 않은 걸까? 그래. 그럼 무슨 낙으로 사는 거지? 그렇다면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작년에 독하게 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1년간 밀가루, 설탕과 같은 탄수화물과 당류를 극도로 절제해왔다.

그렇기에 담배를 더 피는 듯싶어, 이런 내가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병원 금연 클리닉에서 니코피온도 처방받았고 담배도 줄이긴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 오늘은 스스로에게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담배, 섹스를 제외한 도파민 폭발을 일으킬 물질은 무엇일까? 구구크러스터 한 통? 아 이건 칼로리가 어마 무시해. 초코 다이제스트? 이것도 칼로리에 비해 가성비가 안 좋아... 그럼 뭐가 있을까... 아. 치킨! 


배달 앱을 키고 좋아하는 치킨 브랜드를 검색하다 다 식은 치킨을 3만 원 가까이 주고 먹는다는 생각에 이건 아니라고 판단을 해, 집에 있는 재료로 치킨을 만들기로 한다. 


집에서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닭 볶음탕용 닭과 튀김가루, 마늘가루, 식용유, 올리고당, 소금, 후추 등이 필요하다. 


처음엔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하여 오븐 스타일의 치킨을 만들었지만, 오븐치킨은 나에게 있어 타협적인 맛이다.


나는 원래 지극히 건강하지 않은 맛과 기름을 좋아한다.  켄터키후라이드치킨은 아직 내가 못 만들고, 경리단에 좋아하는 엉터리 통닭 스타일의 튀김옷 두꺼운 옛날 치킨을 만들기로 한다. 

마트에서 사 온 닭 볶음탕용 닭을 꺼내 물에 씻어내고 이후 올리브유와 소금  및 후추 그리고 약간의 소금을 버무려 30분 이상 내장고에 재워둔다. 이후 튀김가루와 물의 양을 1:1로 섞어 반죽을 만들어 재워 둔 닭을 통째로 넣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튀김 옷을 바르는 과정이 남는다. 


투명한 봉지에 튀김가루를 넣고 염지 된 닭을 잘 버무린다. 살살 그리고 적당히 많이. (난 튀김가루를 좋아하니깐) 이와 동시에 식용유를 데우기 시작한다. 집에 온도계가 없어서 튀길 온도가 되었는지 잘 모를 때엔 젓가락으로 반죽 가루를 묻혀 한 번 넣어본다. 반죽이 기름에 떨어지고 난 뒤 4초 정도 표면에 올라와 튀겨지면 적당한 온도라고 한다. 이후 아주 정성스럽게 한 조각씩 기름에 넣어준다. 약 8분이 지날 즈음에 미리 썰어 둔 감자도 넣어준다.  


이후 치킨은 완성되고 한 입 베어 문다.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든다.  어설프지만 괜찮다. 다음에 소주 한 잔과 먹으면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 치킨무가 없다. 근데 치킨무를 따로 팔진 않으니깐 다음에는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 


기름기는 나를 위로해 준다. 치킨을 천천히 먹을 30분 동안은 어떤 상념과 괴로움도 잠재워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더불어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몰래 소주 한 병과 먹었던 5천 원짜리 옛날 치킨, 군 휴가 때 친구들이 사 온 ,더럽게 비쌌던, 강원도 철원 와수리 싸구려 치킨 등 옛 기억들이 소환된다.  


뭔가에 떨어졌을 때 혹은 상념이 가득할 때 기름기가 풍만한 치킨 한 조각을 드셔보시라. 싹 날아간다. 

내가 만약 치킨집을 차린다면 이런 슬로건으로 카피캣하고 싶다. 


'죽고 싶지만 치킨은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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