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플 이야기
쑤가 "회사를 떠난다"는 말을 건넸을 때, 저는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쑤가 얼마나 오이씨를 사랑하는지, 쑤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겨울, 건강 문제로 맘고생해온 모습을 보아온 터라 감히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설득할 수 없었거든요. 물론, 서운했죠. 그녀의 헌신과 정성이 더해져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나아지면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떠나버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는데,,, 등등
( 아... 쓰다 보니 울컥해지네요 ㅠ)
쑤는
창업자 이상으로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 완결적인 일처리가 가능한 사람입니다.
냉정하고 엄격하게 업무를 처리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한 것은 반드시 해냅니다.
빨리 가고 싶어 서두르는 제 빈틈을 차곡차곡 짚어주고, 채워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돌아보면, 2016년 10월 오이씨가 쑤를 만났던 건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2016년 초반까지, 앙트십교육 서비스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던 오이씨는 "성장"은 언감생신, "생존"이 목표였습니다. 제가 창업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느 창업가들과 달리 "이런 일 하며 살아도 안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희가 해결하려는 사회문제가 너무 복잡, 다기한 문제이기도 해서였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16년에 접어들면서 오이씨도 "성장"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창업"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저희가 제공하는 앙트십 교육에 대한 니즈도 커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런 니즈를 반영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앙트십 교육 서비스에 이어 시작하게 된 서비스가 스타트업 인재 매칭 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인재매칭서비스는 앙트십이라는 건 교실에서 책으로 배우기 보다 (자전거타기를 배우는 것 처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배워야하고, "스타트업"이라는 작지만 스마트한 조직에서 일하는 경험은 효과적으로 앙트십을 장착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판단에서 키워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청년창업은 어렵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게 목표라면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리얼월드 러닝으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업"으로 선택하는 경우라면 타고난 창업가DNA가 충만한 경우가 아니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선택지 입니다. 반면, 스타트업 취업은 월급 받으며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앙트십을 키워갈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스타트업 인재 매칭서비스라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시작한 건 저와 기존 오이플이었지만, 스타트업 인재 매칭을 사업답게 키워낸 건 바로 쑤였습니다(쑤 역시 매칭서비스를 통해 발굴하게 된 보석같은 인재입니다.)
쑤는 스타트업 인재 매칭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참가자와 매칭 스타트업등을 살뜰히 챙겼고, 한결같은 정성으로 시간의 힘을 통해 고객들의 단단한 신뢰를 이끌어 냈습니다. 2016년 3월 5명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쑤가 사업을 담당하는 동안 1321명이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442명이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서비스로 성장했습니다. ( 스타트업인턴즈는 그 동안 쌓인 경험과 자원을 바탕으로 2019년 5월 조인스타트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지만, 저희처럼 작은 스타트업은 구성원 모두가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잡다한 일들을 나눠서 처리해야 합니다. 쑤는 사소한 룰세팅 부터 새로 합류하게 된 주니어 오이플의 일하는 태도까지 제가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챙겼습니다. 특히, 회사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할 때는 쑤의 꼼꼼함과 정성스러움이 빛을 발했습니다. 쑤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뒤져 최적의 물품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죠. 저희 사무실을 방문한 분들은 “사무실이 참 좋다”고 말해 주시는데, 이 아늑하고 산뜻함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했던 저렴한 비용은 쑤의 부지런함과 센스가 빛을 발한 결과입니다.
쑤는 늘 오이플들을 한 명, 한 명 살뜰히 챙겼습니다. 하지만 오이플 중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단연코, "저" 일 겁니다. 빨리 가고 싶어 허둥대는 대표를 안정시키고, 냉정히 의견을 건네고, 요리조리 재고, 아니라고 솔직히 말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쑤는 제게 그야말로 보물 같은 동료였거든요. ( 다시 엉엉 )
너무 잘 맞는 회사를 만나 그동안 날개 달고 일했던 것 같아요.
첫 직장이 이렇게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제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좋은 멤버들이 정말 열심히, 우리 오이씨를 너무 사랑하고 있으니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돌아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고, 미안한 마음 뿐이지만 쑤가 건네준 손편지 속 따스함을 되새기며 앞으로를 기약해 보려 합니다. 쑤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오이씨에 재입학해 준다면 완전 웰컴이구요. 이렇게 고마운 쑤에게 무얼 선물할까 고민하다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대표로서 느꼈던 쑤를 적어 선물하면, 나름 쓸모있는 추천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쑤와 함께 했던 시간과 느낌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이제서야 이별이 실감 나네요.
우리 인연은 이제 시작이니, 잠시 이별도 다시 만남으로 이어지겠죠?
앞으로도 자주 놀러 와요. 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