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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Jan 07. 2020

2020년, 최고 매출 찍고
따로 또 같이 시작합니다

오이플 이야기

변호사에서 창업가로


 돌아보면 저는 항상 ‘뭐하고 살까?’에 대한 고민과 열정이 강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뭐 라건 내 맘이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한 시도에 거침이 없는 편이었죠. 그런 저의 갈망과 도전은 수 차례 명함 갈이를 하며 “창업가”라는 직업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창업가라는 직업을 꿈꿔본 적이 없었어요. 따지고 보면 변호사라는 첫 번째 직업 역시 우연과 필연의 결과물이었죠. 대학시절, 식품영양학이라는 전공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저는 일찌감치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던 제게 운명처럼 변호사라는 직업이 다가왔죠. 대학 4학년 여름학기, 취업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수강하게 되었던 민법총칙 수업은 제게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어요. 사람과 사회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기까지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얻기까지 실패와 희망이 번갈아 오가던 20대의 5년은 ‘포기'라는 단어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올 만큼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가혹했던 시간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암울함과 고단함이 악몽으로 이어지곤 한답니다. 변호사 시절은 나름대로 보람도, 즐거움도 느끼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이 생겨나면서 자꾸만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었죠.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법조계의 시계는 더디고, 지루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제게 돌파구가 되어 준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매달 창업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 쓰는 일이었죠. 그렇게 2년 여의 시간 동안 창업가들을 만나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다시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열망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그 열망에 기름을 부어준(본인들은 모르지만^^:;) 인터뷰이들이 박지영(모바일 게임회사 컴투스 창업자), 이광석(온라인 구인구직서비스 인크루트 창업자) 대표님이었어요. 이들과의 만남은 머뭇거리던 저의 무모한 도전에 엔터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결국, 저는 법률시장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이상을 품고 로펌을 떠나  법률사무소 겸 북카페라는 낯선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스승님께 받은 글씨를 전각 작가님께 부탁해 거금을 들여 간판을 만들었던 첫 번째 창업. 간판에 쓸데없는 거금을 들여 비용을 낭비할 정도로 창업세계에 무지하고, 무능했다.

  결론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월급 받으며 살던 직장인에게 창업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이상은 아름다웠지만, 냉정한 현실을 몰랐던 초짜 창업가로서의 도전은 서둘러 막을 내려야 했죠. 한동안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어요. 경솔하고도 무모한 도전이 후회스럽기만 했고요. 경솔한 도전을 반성하며 로펌 생활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로펌 살이는 더 이상 저의 열정을 이끌어내지 못했어요. 결국, 시계추처럼 오가던 로펌 생활을 정리하고, 창업의 위험을 낮추면서도 나의 관심 분야인 교육시장을 경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임원 전문교육기관에서 협상교육 연구위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은 창업가로 살아가고 싶었던 저의 열망을 잠재울 수 없었어요. 저는 다시 직장생활을 벗어나 야생의 들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실패를 경험했던 터라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솔한 도전 대신 준비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관심 분야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주력했죠. 그렇게 자원활동이 계기가 되어 만난 단체가 제주에 걷는 여행길을 만드는 제주올레였어요. 2009년 제주여행 중에 묵었던 숙소에서 제주올레 1코스 리플릿을 접하던 순간, 저는 제주올레가 제주여행을 바꿀 거라는 확신을 품게 했어요. 대학 시절 경험했던 해안도로 도보여행은 내게 제주올레가 주는 매력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게 했거든요. 뙤약볕 아래 제주의 해안도로를 걷는 일은 고행 그 자체였죠. 하지만, 제주의 골목을 돌며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제주올레는? 제주의 속살을 온몸으로 느끼고픈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해결책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제주올레와의 인연은 저에게 제주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 주었고, 저는 제주올레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설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주를 드나들다 제주를 다음 세대의 도시로 만드는 꿈을 품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중 핵심인물이 작년에 제주 더 큰 내일센터( https://www.jdnc.or.kr/index.do ) 대표를 맡게 된 김종현이에요. 김종현은 IT 대기업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면서도 항상 조국의 미래와 지역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는 '이상'한 사람이었죠. 그런 이상한 사람이 대 놓고 청년의 미래를 돕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제주의 더 큰 내일이 기대됩니다.


 그 와중에 우연에 필연이 더해져 만나게 된 투자자가 바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이재웅 대표였어요. 그는 저의 시행착오 가득한 여정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었고, 그의 관심은 '혁신기업가 학교'라는 모호하지만 가슴 뛰는 도전으로 이어졌어요. 당시 이재웅 대표는 사회문제를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소셜벤처 창업가를 발굴해 투자하는 소셜벤처 투자회 sopoong( http://sopoong.net/ )을 만들었어요. 저는 미디어에서만 보던 훌륭한 투자자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2010년 이재웅 대표 소개로 만난 공동창업자들과 팀을 이뤄 혁신기업가 학교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시간은? 다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혁신기업가 학교라는 아이디어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거든요. 지지부진한 성과 속에 팀원들은 하나, 둘 떠나가게 되었고, 포기하지 못한 저만 홀로 남아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답니다.


버림받아 살아난 앙트십스쿨

2013년 12월 드디어 투자자는 ‘이제 그만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더군요. 우리가 하려는 사업은 '돈 많은 재단이 하거나, 국가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는 마지막 조언을 남기며. 투자자의 투자 종료 선언은 진한 패배감과 불면의 밤을 선물해 주었어요. 뜬눈으로 맞는 밤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 맘 속에 잠들어있던 창업가 DNA가 깨어나기 시작했어요. '딱 1년만 더 해보자' 고. 그렇게 저는 통장을 헐어 종잣돈을 마련해 다시 시작했어요. 고백하건대 2014년도 앙트십스쿨( https://www.entshipschool.com/ )의 비즈니스 모델은 '앵벌이' 였어요. 학교는 강사료에 기반해 외부 전문가의 수업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비즈니스로 접근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뾰족한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저의 선의를 믿어주시는 기업인들을 찾아다니며 앙트십 수업 후원을 부탁했고, 그렇게 '한 번이니까' 부탁을 내치지 못한 선의에 기대어 앙트십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선의에 기대어 시작하게 된 앙트십스쿨은 6년의 시간을 버텨내는 동안 네이버와 아산나눔재단이라는 안정적인 클라이언트 외에도 전국의 교육청과 개별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의 신뢰와 응원에 힘입어 이제는 공교육 현장에서 미래인재를 길러내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앙트십은 지난 7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앙꼬쌤,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앙트십스쿨로 만난 친구들 중에 아직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에 다녔던 전채원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조인스타트업을 통해 나우버스킹이라는 스타트업에 취업해 4년 차가 되었어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다녔던 안서형은 대학 진학 후 창업을 해서 저 보다 더 멋진 창업가로 성장하고 있고요. 전채원, 안서형 님 그리고 저희와 함께 앙트십을 길러낸 앙꼬쌤, 선생님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기업가정신으로 학교 '확' 바꾼 삼괴고 오일환 교사 ( 기사 보기 )

앙트십스쿨을 함께 길러낸 앙꼬쌤들 인터뷰( 기사 보기 )

앙트십스쿨로 앙트십 접하고, 조인스타트업으로 스타트업 취업한 전채원( 인터뷰 보기 )

앙트십스쿨로 만나 창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응원하고 있는 안서형(인터뷰 보기)

제 창업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 인터뷰 보기 )



취업과 창업의 징검다리, 조인스타트업

앙트십으로 만난 친구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들게 된 서비스가 조인스타트업이예요.

(https://www.joinstartup.co.kr/)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그만큼 호흡도 길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려웠어요. 앙트십을 접한 친구들이 뭐가 달라진 건지 증명하기도 어렵고(저희는 학교 성적을 올려주는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서 ,,, 쩝), 뿌듯함에 기대어 지속하기에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곤 했죠. 그리고 치명적이고도 현실적인 깨달음 하나 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앙트십스쿨'은 배움으로만 끝날뿐 현실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 늘 아쉬웠어요. 이러한 '교육'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지인은 '신데렐라의 12시'라는 표현을 건네더군요. '삶을 위한 배움'이 학교에서만 머물면 신데렐라의 마차가 12시면 호박으로 변하듯, 다시 제 자리라고. 그렇다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할 수도 없었어요. 앙트십 뿜뿜한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창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작하게 된 서비스가 스타트업과 인재를 잇는 스타트업 인재 매칭 서비스였어요. 작은 스타트업에서 창업가처럼 일하면 내 돈 들여 창업하지 않아도 '내 인생의 ceo'로 살아갈 수 있는 앙트십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조인스타트업은 2016년 3월 참가자 5명으로 시작해 12월에는 8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2016년 3월과 12월의 조인스타트업 프로그램 운영 모습

서비스를 운영하는 측면에서 조인스타트업은 앙트십스쿨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어요. 청소년에 비해 청년들은 훨씬 소통하기 편했고, '스타트업'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지를 선택한 청년들은 그들의 열정에 숟가락 얹고 싶을 정도로 뜨겁고, 치열하고 멋진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고백하건대, 조인스타트업의 최대 수혜자는 오이씨였어요. 오이씨는 1500여 명의 참가자 중 오이플 후보자들을 먼저 만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멋진 인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500여 명이 스타트업이라는 세상을 만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어요.

2020년 500명이 넘는 인재들이 조인스타트업을 통해 스타트업라이프를 살게 되었어요

변경 전 서비스 이름이 스타트업인턴즈였던 것처럼 조인스타트업은 공익적 미션이 강해 스타트업얼라이언스, sba(서울산업진흥원)라는 파트너와 함께 운영했어요.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는 파트너와 함께 했기에 순조로운 출발과 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 다운 성장'을 이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결국, 2019년 2월을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인턴즈는 클라이언트에 기대지 않는 독자생존의 길을 선택하고 조인스타트업으로 서비스 이름을 바꿔 서비스 유료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어요. 무려 8개월에 걸친 고통스럽고도 어려운 유료화 과정을 통해 조인스타트업은 새로운 시장의 니즈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세대를 불문하고 지식근로자들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사실과 혁신기업, 조직일수록 성장단계에 맞는 인재풀 확보가 생존과 성장을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장의 니즈를 반영해 조인스타트업은 개인 고객에게는 '나를 위한 커리어성장솔루션'으로 기업고객에게는 '성장형 인재 매칭 서비스'로 리뉴얼될 예정입니다. 새로워진 조인스타트업은 유능한 인재풀을 길러내고, 확보하고 , 캐시카우 역할까지 하는 비밀병기 루키-업을 갖고 있는데요, 루키-업은 온라인의 효율과 오프라인의 효과성을 결합해 효율과 효과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한편, 현장감 있는 학습을 위해 시뮬레이션 게임 방식으로 배우는 비즈니스 입문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 https://www.joinstartup.co.kr/rookie-up )

새롭게 출발하는 조인스타트업의 2020년을 기대해 주세요


조인스타트업과 앙트십스쿨이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2020년


지난해에 창업가로서 보낸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오이씨(oec)의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 고민 끝에 지난 10년 동안 '돈 되는지'가 아니라 '필요한 일인지'라는 기준으로 '일을 만들고' 10년을 버텨왔지만, '앞으로의 10년'은 '달라져야 한다'라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돈 될 일 없는' 서비스의 특성상 차입금 한 품 없이 우리가 번 돈만큼 조금씩 성장하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지금의 방식이라면 착하고, 능력 있는 우리 오이플들에게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을 안겨주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거든요.


2020년 오이씨와 오이플이 선택한 결론은 '따로 또 같이 성장'입니다!!


1. 앙트십스쿨과 조인스타트업은 별개의 법인으로 분리해 독자 운영한다. 

    앙트십스쿨은 샘과 눌이 공동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조인스타트업은 장단이 운영한다.

2. 오이플은 (함께 해주면 고맙지만) 개인의 니즈와 고민을 반영해 커리어를 선택한다.

    장단과 오이씨는 오이플의 선택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돕는다.


앙트십스쿨은 저와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디고 이겨낸 조혜선 님 그리고 조인스타트업을 통해 오이씨에 합류해 최고의 앙트십 콘텐츠를 만들어낸 박누리님이 공동대표를 맡아 운영하게 됩니다.

박누리님은 조인스타트업을 통해 오이플로 합류해 3년 만에 20대 대표가 되었어요. 눌의 3년 후가 진심으로 기대됩니다. 


샘(조혜선님의 닉네임이예요)은 2013년 벤처스퀘어에서 일하던 당시, 오이씨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취재하러 와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오이씨가 운영한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통해 한 걸음 더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만난 인연이 공동창업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앙트십을 사랑하고 앙트십스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오이플이죠 3년 전 인턴으로 오이씨에 합류해 앙트십팀의 핵심인재로 성장하게 된 박누리 님은 앙트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낸 교육경험 디자이너입니다. 눌은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요, 그 아이들에게 앙트십을 통해 더 멋진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 보다 앙트십을 잘 알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오이플들이 대표를 맡게 되었으니 앙트십스쿨은 이제껏 보다 더 멋지게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새롭게 비상할 조인스타트업은 이제껏 함께 해주신 코치님들이 앞으로도 함께 해주실 거고요,

새롭게 합류하게 될 능력자들과 함께 힘을 합쳐 멋지게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있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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