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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Dec 24. 2022

6년차 기자가 주도권을 지키며 일하는 법

박지윤 기자의 커리업 이야기 

6년 차 직장인에게 일은 낯설지도, 익숙지도 않은 친구 같아요. 

더 잘하고 싶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는 녀석과 잘 지내려면

"일의 주도권"을 지켜내야 하죠.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거센 공격을 받고 있는 종합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는 준은 

일이라는 녀석과의 줄다리기를 제법 잘 해내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그에게 "일"에 대한 질문을 건넸더니, 준은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쏟아냈어요. 

6년의 시간을 깊은 고민과 젠 걸음으로 채워온 준의 답변은 문장마다 주옥같았죠. 

지면 관계상 어피티 칼럼에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아래에 붙여볼게요. 


Q. 내 일의 단짠을 알고 싶어요.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아쉽고,,, 이런 내용요. 

기자로서 좋은 점은, 제 업을 지렛대로 삼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마음껏 질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저는, 제 일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인터뷰이와 마주 하는 순간을 가장 사랑해요. 때로는 울림 있는 교감이, 또 때로는 긴장감 어린 논쟁이 오가는 대화를 마치고 나면, 인터뷰이도 저도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곳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모든 순간에 그런 멋진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요. ^^) 그런 인터뷰를 하고 나면, 인터뷰이와 작은 배를 타고 힘껏 노를 저어 커다란 호수를 건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탈진한 상태지만, 가슴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온 듯한 흥분이 뭉게뭉게 차오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올 땐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쓴맛’도 없지는 않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 세상의 모든 창작 노동자들이 느끼는 ‘마감 스트레스’ 예요. 심지어 제 기자 동료 중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자’보다 ‘마감 노동자’라고 정의할 만큼, 일간지의 기자들이 느끼는 마감의 압박감은 무척이나 무거워요. 약간은 아이러니한 게 취재가 좋았다면, 기사를 쓰기는 배로 어려워져요. 현장에서 느낀 그 사람만의 에너지,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느낀 탄력 같은 비언어적 감각을 글로 담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거든요. ‘잘 쓰고 싶다’는 압박감에 날밤을 샌 적도 많아요. 기사란 매우 노동집약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구상부터 기획, 취재와 정리, 쓰기와 마감, 편집과 발행까지 거의 한 명의 기자가 ‘전담’해요. 그렇다 보니, 외로울 때가 많죠. 여러 명이 팀을 이뤄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다른 업의 형태가 부럽기도 해요. 게다가 지금은 특정 부서에 소속되지 않고, ‘1인 조직’의 형태로 ‘커리업’ 프로젝트를 혼자 하고 있다 보니 더더욱 아쉽죠. 혼자 해낼 때보다 ‘여럿이서 함께 해낼 때’가 배로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거든요.


Q. 현재 일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 기준으로 몇 점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해요. 

5점을 만점으로 했을 땐, 3점 정도인 것 같아요. 평가가 후하지 않은 이유는 제 일에 대한 긍지가 큰 만큼, 기대 역시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포맷도 많고, 기왕이면 뜻이 맞는 이들을 직접 섭외해 팀까지 꾸려보고 싶은데, 혼자 차린 회사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회사 안에서 벌이는 프로젝트인 만큼, 현실적 제약이 적지 않아요. 그래서 적은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인지, 매일 고민하며 일하고 있어요. 콘텐츠의 질에 대한 기준 역시 높은 편이라, 때로는 제가 만든 결과물이 충분히 흡족하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래서 쉽게 지치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일에 대한 만족감이 충만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저의 기준과 조직의 기준, 독자의 기준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답니다. 열심히 답을 찾고 있어요. 


Q. 일잘러가 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자가 되고 나서 들었던 선배의 말 중 가장 인상적 한마디가 있어요. ‘80%만 쓸 수 있다 해도, 150% 이상 취재하라.’ 누군가에겐 판에 박은 듯한 훈계일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 말이 일을 해 나가는데 항상 나침반이 되어줬던 거 같아요. 150%를 준비해 놔도,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과 여건상 80%는커녕 50%도 못 쓰는 경우가 정말 많았거든요. 저는 그렇게 남겨진 70%~100%의 여분이 결코 ‘버려지는 노력’이 아님을, 연차가 쌓이며 알게 됐어요.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어젠다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취재 대상이 보여주는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이 키워졌죠. 주어진 일의 몫이 열 걸음이라면, 항상 거기서 세네 걸음은 더 나아가 보는 게 습관이 되니 배우는 폭 역시 넓어졌고요. 쓰다 보니 너무 뻔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모든 탁월함은 결국 ‘기본’의 기반 위에서 연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시간을 쏟은 만큼 성장하더라고요. 마법같이 경로를 단축해주는 지름길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제가 닮고 싶은 사람들을 따라다녔다는 거예요.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싶었던 상사와 선배들을 눈여겨보고, 자꾸 다가갔어요. 밥 사달라고 연락하고, 고민이 있다고 연락하고, 그분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또 연락하고. 그저 함께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배울 것이 많았는데, 그러다 함께 일할 기회를 얻게 됐을 땐 정말 마음껏 어깨너머 곁눈질로 배웠죠. 같은 회사 동료들끼리 만나면 자연스럽게 상사욕과 신세한탄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안 되는 이유’보다 ‘어떻게든 되게 할 방법’을 의논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열심히 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블라인드’ 커뮤니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에너지를 쭉쭉 빨아들이는 우울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그 반대쪽에서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의 볼륨을 키우려 노력했던 거 같아요.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나 전자의 소리가 후자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반드시 ‘크기 조절’이 필요해요.


Q. "일하는 나"를 위해 되새기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터에서의 제 좌우명은 ‘주도권은 나에게’ 예요. 번아웃, 슬럼프,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든 빈번하게 쓰이는 시대잖아요. 특히 우리나라엔 일 때문에 아픈 사람이 정말 많아요. 제 주변만 하더라도, 회사일로 공황장애를 얻어 치료를 받거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분들이 많죠. 그 이유를 잘 들어보면, ‘일의 양 자체가 많아서’인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일의 주도권을 빼앗겨 끌려다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무리한 지시를 내리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관습적으로 야근을 하기 때문에 지치는 경우도, 일이 주는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자기 자신을 미친 과로사이클에 몰아넣은 경우도, 결국 ‘내가 일에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큼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동기를 납득할 수 있고, 그 일의 목적을 알 수 있을 때, 제대로 동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저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인만큼, 그 성향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해요.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애정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텅 빈 단어 밖에 늘어놓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언제나 제 일, 제가 쓰는 글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해요. 제가 적어 넣은 바이라인 앞에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늘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Q. 앞으로 "일하는 나" 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제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아요. 그만큼 여러 가능성과 다양한 선택지가 제 앞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일을 계속하고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겠다는 예감은 들어요. 제 안에서 정해둔 세속적인 성공의 기준, 무조건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지만, 꼭 지키고 싶은 가치는 있어요. 그건 ‘높은 완성도를 탐하는 욕심과 탁월함에 대한 열망’인 것 같아요. 최근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인터뷰를 보며, 문득 마음이 벅차더라고요. 30년에 걸쳐 영화 <아바타> 시리즈 설계와 구현을 무서운 집념으로 완성한 일대기를 보며,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낸 그의 완벽주의가 경이롭게 느껴졌어요. 오래오래 욕심을 잃고 싶지 않아요. 탁월하게 멋진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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