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쉰 맛이 나서 그렇다고 한 건데 왜 따지고 난리야????"
제주 교래자연휴양림 초입에 있는 매점 앞에서
매점 쥔장 아가씨와 중년 남성이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었다.
싸움의 요지는
중년 남성이 대추차를 매점에서 사서 마셨는데
맛이 왜 이따구냐,,,는 반응을 뱉었고,
매점 쥔장이 그의 말에 발끈해
"그럴 리가 없다"를 외치며 따라나선 것이다.
돈을 냈으니 불평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한 손님은
쥔장이 매점 밖으로까지 따라 나와 "그럴 리가 없다"를 연발하니
방어기제가 발동해 언성을 높여 싸움을 이어갔던 것이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는 모양새를 살펴보니
그냥 두면 더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나는 매점 쥔장에게 슬쩍 다가가
"대추차 먹고 싶다"며 팔을 끌어당겨 싸움을 말렸다.
잡아끄는 내 팔에 이끌려 매점 안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발이 떨린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 일행은 그녀에게
"세상에는 더한 사람들도 많다"며
"너무 맘 상해하지 말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로부터 주문한 대추차를 받아먹어보니
그녀의 분노가 뭉개져버린 자존심에 근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새벽부터 일어나 대추를 푹 고아 만들었다는 대추차는
대추의 진향 풍미와 식감에 호박씨와 잣까지 듬뿍 담겨있었다.
"이렇게 훌륭한 차를 관광지에서 4천 원에 판다고?" 싶었으니
그녀가 손님의 말에 발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와 헤어져 휴양림을 오르며
그녀는 아픈 부모님 대신 매점을 맡게 되었고,
부모님이 지켜온 명성에 해가 되지 않으려 애써온 노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손님의 말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더한 손님들을 품어낼 수 있는 마음밭을 키워야겠지만,
내가 만든 대추차에 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들은
남들이 뱉은 말에 상처받기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상처받기도 쉽다.
그 상처가 깊은 침몰로 몰아가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K가
쉽게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스스로가 세워둔 높은 기준 때문이었다.
때로는 그 기준을 낮추거나 숨통을 낼 필요도 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덧)
교래자연휴양림 매점 대추차 완전 강추입니다
대추차를 맛보시거든, 그녀에게 "맛있다"라고 건네주세요.
대추차가 날마다 진화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