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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Jun 14. 2020

17살 우리 딸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

세상에, 벌써 17살 이라니

2020년 6월 14일 오늘은 딸의 17번째 생일입니다.

어제는 딸의 생일상을 차려볼 생각으로 미역국 재료와 딸이 좋아하는 생선도 샀습니다.

요즘은 식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가족들이 함께 밥먹는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한 것 같네요.

생일을 맞는 딸에게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결국은 생일맞이 특별 용돈을 주기로 했습니다.

딸은 어릴 적 포켓몬부터 시작해 애니메이션 덕후인데, 취미생활에 필요한 용돈벌이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본인이 갖고 있는 소품들을 수신자 부담 택배로 보내 주고 대여료를 받는 소소한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돈만으로 생일 축하를 하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2018년에 이어 2020년의 우리 딸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제 딸에게는 일단 비밀로 할 생각입니다. 본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는 걸 꺼리거든요.

언젠가는 엄마가 적어둔 글을 보게 될 딸의 모습을 그리며 살포시 적어봅니다.


딸은 제게 '참 좋은 친구' 입니다.


힘들 때면 딸에게 기댑니다.

사람들은 제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열정의 근원이 무엇일까 저도 궁금했는데, 최근 지인이 해준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제 열정의 근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꿉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떠난 것도 예측 가능한 일상의 반복이 싫어서였습니다. 창업가는 예측불허의 롤러코스터를 이겨내고, 즐겨내야 합니다. 물론, 진짜 창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예측불허의 일상을 뚫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무엇'을 만들어야 하죠. 제 머릿속은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그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창업가로 살아가는 일상은 희로애락의 폭이 크고도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밖에서는 하이레벨의 에너지를 보이는 저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제게 딸은 기댈 언덕이 되어줍니다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저는 딸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딸은 그런 저를 포근하게 안아줍니다. 저는 딸에게 안겨 딸이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며 무거움을 덜어내곤합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 조인스타트업 유저들에게 조이너스 레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기댈 언덕이고 싶은 마음에 "여러분의 기댈 언덕, 조인스타트업 드림"이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하는데요, 서비스 유저들에게 기댈 언덕이 되고픈 저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이가 바로 딸입니다. 일하는 엄마를 둔 딸은 어렸을 적부터 스스로 해내는 습관을 키워왔습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딸은 끼니도 스스로 챙기고, 학교 준비물도 스스로 챙겼습니다. 집안일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엄마를 둔 탓에 딸은 이제 집안의 생필품을 채워 넣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성숙한 모습을 보이던 딸이 대견하기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런 딸에게 기대이며 살아갑니다.


딸은 제일 좋은 여행친구입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저는 지난 3년 동안 딸과 함께 꾸준히 여행을 다녔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 한 집에 머물며 도시를 탐험하는 방식으로 즐겼습니다. 집에 머무는 동안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집에서 생활하지만, 각자의 일상이 있다 보니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하루에 30분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은 깨어있는 시간을 함께 하게 됩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취향에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지만, 딸은 포근한 성품으로 호기심 많은 엄마를 든든하게 지지해 줍니다. 3년 전 핀란드 여행을 갔을 때, 한적한 마을에서 마지막 날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핀란드의 마지막 날을 즐기며 딸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딸은 어떤 사람이고 싶어?"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깃발을 함께 드는 사람이고 싶어"

"깃발을 함께 드는 사람이라고?"
"엄마를 보면 깃발 들고 나서는 용감형인데, 나는 그런 사람을 옆에서 돕는게 좋거든"

아,, 깃발을 함께 드는 사람이라니. 그래서 내게 우리 딸이 편하고, 좋았구나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딸은 여행을 함께 하는 동안

짐이 있으면 먼저 챙겨 들고

구글 지도로 먼저 길을 찾고

엄마가 좋아하는 맥주를 늘 챙겨주었습니다.

이런 ,,, 적고 보니 고맙고 보고파서 눈물이 나네요.


딸을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딸은 저 보다 젠더 감수성이 강하고, 다양성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앤 마리, 두아 리파 처럼 센 언니 스타일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딸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고, 타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갑니다. 언젠가 집에 쿠기 선물이 들어와 무심코 딸에게 학교에 가지고 가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딸은 제게 말하더군요.

엄마 과자가 15개인데, 우리 반 아이들이 총 28명이야.
내가 가지고 가서 나눠주면 13명은 못 먹는 거잖아.
28개가 넘으면 가져가도 좋겠지만,
누군 먹고, 누군 못 먹는다면 안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돌아보면, 딸은 항상 주어진 상황을 평면적으로 보기보다는 그 안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사람에 관심이 많다는 저이지만 때로는 섬세하게 살피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딸은 그런 제게 늘 배움의 기회를 안겨줍니다.


그런 딸이 거꾸로캠퍼스에 입학해 개인과제로 선정한 주제가 '내가 만든 디즈니 프린세스'였습니다. 딸은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이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디즈니도 요즘에는 인종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백인, 10대, 개미허리 그리고 모두 왕자님을 향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딸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레즈비언, 29세, 쇼컷, 정치지망생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프린세스를 제안했습니다. 엄마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주제를 파고들어 디즈니에 보내는 경고성 메일로 발표를 마무리하는 딸을 보며 다시 한 번 배웠구나 싶었습니다.


오늘 딸은 다시 거꾸로캠퍼스 생활을 하기 위해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코로나로 인해 줌으로 원격수업을 했던 거꾸로캠퍼스는 100명의 학생들이 가로 반과 세로 반으로 나눠 2주씩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합니다.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가는 거꾸로캠퍼스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딸은 이제 거꾸로캠퍼스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딸은 작년 여름 방학을 마친 후 동네학교등교 대신 거꾸로캠퍼스 입학을 선택했습니다. 1년이 흐른 지금, 우리 가족의 의견은 '대만족' 입니다. 딸은 공교육이 바라는 모범생보다는 모험생에 가깝습니다. 그런 우리 딸에게 거꾸로캠퍼스는 더 많은 칭찬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딸은 이번 모듈(거꾸로캠퍼스는 학기 대신 1년을 4회로 나누어 모듈로 운영합니다)에 건안부(건강안전부) 리더가 되어 친구들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별것 아닌 역할이지만 작은 조직의 리더를 맡아 발표자료를 준비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딸은 조금씩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겠죠?

이제 늦잠 자고 일어날 딸을 위해 생일상을 차려야겠습니다.


한 돌 나들이 때 찍은 영상을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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