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서 글로벌 서비스 만드는 스타트업, 픽소 최한솔
저희랑 잘 맞는 팀원을 만나고 싶어서
신청했어요
픽소의 신청서에 적힌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제 눈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외부 투자 없이 독립적으로 성장해 매 해 300% 매출 증가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투자유치가 스타트업의 성공방정식으로 비치는 요즘 '외부 투자 없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하고 있는 픽소가 궁금해졌습니다. 투자라는 지렛대를 통해 수많은 유니콘들이 태어나지만 '업의 본질'은 고객 창출과 고객 만족이니까요.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색깔은 결국 스타트업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철학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도대체 픽소라는 기업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디자이너 최한솔 님의 첫 번째 직업은 회계 담당자였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 학교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세무사로 일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취업 잘 되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세무, 회계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세무, 회계 공부는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패션 쇼핑몰 사업을 시도해 보기로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패션'이라는 키워드는 숫자가 주는 지겨움을 떨쳐낼 수 있는 재미와 열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마련한 종잣돈은 100만 원. 1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디자인 툴을 접하게 된 것도 혼자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해야 하니까 만지게 된 디자인 툴은 그에게 신세계를 안겨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툴을 만지며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내는 과정이 너무 짜릿하고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려던 계획은 어느덧 사라지고 디자인 툴이 안겨준 기쁨을 쫓아 디자이너로 일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에 등록해 혼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빠르게 배워갔습니다. 어느 정도 툴을 만지는 일에 익숙해지자 웹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라는 명함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클라이언트 업무를 만날 수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은 그에게 학교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일을 통해 (돈을 벌면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태도를 배워가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에서는 끊임없이 배워 해내고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메이커로 일하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경우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스타트업 주니어들에게 가능하면 디자인이나 개발을 배워보라고 권하곤 합니다. 디자인과 개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스스로 메이커로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메이커들과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는 창업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쌓고 보니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삶의 방식이 프리랜서 디자이너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원하는 만큼 일하는 삶은 자유로웠지만, 불안하고 외로움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주는 자유로움과 한계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 것'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의 시간을 누렸던 터라 함께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도전을 선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게 첫 번째 창업기업 '라쏘'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당초 팀이 만들려고 했던 아이디어는 '투자 유치'라는 지렛대를 거치며 변경에 변경을 거듭해야 했고, 거듭되는 변경 속에 열정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치열했지만 실패로 끝난 첫 번째 창업은 그에게 '번아웃'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습니다.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넸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서 찾게 된 대답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을 만든다
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메이커의 삶을 원했습니다. 숫자 대신 만나게 된 디자인이라는 작업은 다행히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갖는 장점을 활용해 방전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 '디지털 노마드'였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해보면 더 많은 영감을 얻으며 찐 메이커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내 한 몸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니 더 늦기 전에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싱가포르, 발리,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nomadstory : 한솔님 브런치 글 살펴보기 )
낯선 사람, 낯선 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니 일상에 떠밀려 일할 때와는 다른 감성과 열정이 생겨났습니다. 하루하루가 가볍고도 경쾌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의 시간은 그에게 방전된 열정을 채워주였고, 그 열정을 이어 글로벌 앱을 만드는 인디개발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시간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작지만 강한 팀이 만들어졌고, 글로벌 서비스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시장의 기회를 예민하게 살펴 최소한의 기능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아니라 생각되면 빠르게 접고, 기회라 생각되면 빠르게 키워냈습니다. 그렇게 기회를 찾아 만들고, 키우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시장을 보는 안목도, 시장을 키워내는 역량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인디개발팀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한 업무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글로벌 서비스가 Baby story와 logo maker shop입니다.
우리 팀이 만든 서비스가 글로벌 마켓에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기쁨을 넘어 감격의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인디개발팀을 꾸렸고, 우리가 필요한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제품을 만들었을 뿐이었는데 글로벌 플랫폼을 '잘 먹고, 잘 사는 수익'까지 얻게 된 겁니다. 메이커로 먹고사는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유저가 늘어갈수록 마음 한편에서 아쉬움과 새로운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유저수를 인디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더 많은 유저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개인적인 자유를 양보하더라도 훌륭한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픽소는 작지만 단단한 팀으로 새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픽소는 스스로의 힘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키워가는 asana, mailchimp를 롤모델로 두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은 아이디어가 기술을 만나 글로벌 시장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고, 그 기회를 스마트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로컬 기업이 바로 픽소입니다. 거침없이 투자를 유치하고 빠르게 규모를 키워가는 유니콘과는 전혀 다른 성공방정식을 써가는 픽소의 내일이 설레고도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픽소는
연남동에서 글로벌 서비스를 만듭니다.
꼭 필요한 서비스를 딱 알맞게 만들어 냅니다.
투자 유치 없이 글로벌 수익으로 성장해 갑니다.
작지만 일당백 팀원을 만나 단단하게 키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