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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Feb 12. 2021

하지 말란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우리 딸을 키운 건 8할이 덕질

딸아이가 학교를 exit 하고 스타트업 라이프를 시작 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되니 가끔씩 회사를 운영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딸에게 전하고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피드백을 기대하기보다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제삼자의 시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에게 제가 알아가고, 고민하는 것들을 딸에게 전해주고픈 마음에서 입니다.

아직 10대를 지나가고 있는 딸이지만, 이제 딸은 일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이자, 지친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는 보호자의 역할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딸의 성장과정을 가끔씩 제 SNS에 알리고 보니,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분들 중에서 질문을 건네는 분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모험생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직 우리 딸은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선택을 통해 성장하고 있을 뿐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확실의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단단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딸아이와 보낸 시간들을 정리해 적어보려 합니다.


저는 딸이 어렸을 적부터 자주 건네곤 했습니다.


세상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엄빠가 없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그래서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이런 부분에서 울 따님은 본인이 스스로 컸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준비물은 스스로 챙겼고, 만들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소풍 도시락도 스스로 준비했습니다. ( 맨날 같은 걸 싸주는 엄마의 도시락에 실증나 스스로 준비하게 되었다는 게 본인의 의견^^:;) 딸은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스스로 정하고, 재료를 사서, 소풍날 아침이면 깨우지 않아도 6시 전에 일어나(평소에는 등교 30분 전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가) 재료를 손질해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소풍 때마다 도시락은 본인이 스스로 준비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소액의 금액이 충전되어 있는 체크카드를 주고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딸은 바쁜 엄마 대신 떨어진 생필품을 채우는 역할도 맡아하게 되었습니다.


생필품을 구입하는 과정은 아이가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딸과 함께 제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곤 했습니다. 이 물건은 이래서 좋고, 저 물건은 이런 부분이 아쉽다 등등.


남양유업이 대리점 갑질 파동으로 한창일 무렵이었는데, 우리는 마트에서 뭘 살까 이야기 나누다 파스퇴르 일반 우유를 골랐습니다. 마침 파스퇴르 우유가 요구르트를 추가로 껴주고 있어 비싼 가격을 보완하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했고, 저지방 우유는 가공과정을 추가로 거치는 것에 비해 효과는 적으니 가격이 저렴한 일반 우유로 선택하고, 장학사업에 열심이던 파스퇴르가 아쉽게도 회사가 매각되기는 했지만 브랜드 스토리만큼 신뢰할만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유 하나를 고르는 과정에서 딸과 이루어진 대화를 살펴보면,

1) 어떤 물건을 사는 게 좋은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하고 : 의사결정 능력 연습

2) 결정된 내용을 이유와 함께 말해보도록 하고 : 커뮤니케이션 능력 연습

3) 어떤 물건이 어떤 고객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는지 살펴보도록 하고: 생산자로 살아가는 연습

4) 물건이 주는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보도록 하고 : 경제적 판단 능력 연습

5) 기업이 사회에 주는 효과와 가치까지 전반을 살펴보도록 하고 : 사회적 가치 판단 연습

 

요즘에는 학교 교육도 이렇게 다양한 역량을 배울 수 있도록 통합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학교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부모와 자녀가 일상을 공유하고, 그 일상을 통해 배우는 과정을 충분히 활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딸은 동네 초등, 중학교를 다니면서 딱 보통의 학생으로 살아갔는데요, 학교 성적도 보통.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하면 절대 뛰지 않는 공동체의 룰을 준수하는 보통의 학생입니다. 딸은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고등학교 안 가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저에게

'그래도 고등학교는 가야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딸이 휘둘릴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요, 그저 다냥한 가능성을 만껏 누리기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던 딸이 중학교 3학년 1학기를 지나고 거꾸로캠퍼스 설명회에 가보겠다고 하니 저로서도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그래서 네가 궁금하다고 하니 설명회에 가보자고 했고(설명회도 딸은 친구와 함께 갔고, 저희 부부는 따로 참여했습니다), 결정은 설명회에 다녀온 후 함께 의논해서 하자고 했습니다.


설명회에 다녀온 아빠는 아직 시스템이 안정화된 것 같지 않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고, 딸은 동네학교에 다니며 들러리로 지내는 것 보다는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캠을 선택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딸아이가 3학년 2학기를 맞이하는 시점이라 거꾸로캠퍼스를 한 학기 다녀보고 일반고 진학과 거캠 유지 중에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반 학교 진학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라면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여러모로 적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배경에서 아일랜드등에서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 갭이어를 두어 자기탐색을 하도록 하는 점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딸아이의 거꾸로캠퍼스 진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심 놀라왔던 점은 거꾸로캠퍼스의 존재를 알려준 건 저였지만, 제가 알려줄 당시만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딸이 때가 되니 스스로 과거에 들었던 선택지를 스스로 꺼내들만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언어를 공부할 때도 흘려듣기가 효과적인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선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을 가랑비에 옷 젖듯 반복하고,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딸은 거캠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스스로 일상을 살아내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거캠 입소( 지금은 코로나로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당시 거캠은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를 준비하면서 이불이며 베개 등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만들어 온라인마켓에서 구입했고, 입소일애 맞춰 학교로 배달되도록 나름 치밀하게(집으로 배달되면 다시 우리가 날라야하니^^:;) 본인의 독립생활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건

부모의 역할이지만,

선택은 아이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했을 때

성장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충분한 의견교환이 전제되어야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요.


가족들과 함께 딸이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됐을까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모두가 맞장구를 친 지점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였습니다.


우리는

딸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선택에 이끌려 다녔지만 조금씩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나서는 본인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던 아이를 위해 매주 과천에서 헤이리까지 왕복 3~4 시간을 길에 쏟고, 한 번 가면 체험비로 10만 이상을 썼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였습니다.

손으로 하는 걸 유난히 좋아하던 딸. 엄마 회사의 집기를 조립하기도 했죠.

아이는 초등학생이된 후 포켓몬부터 시작해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게 되었는데요, 이 때부터는 주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이를 뒷받침해주려 노력했습니다. 딸은 학교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했고, 자연스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는 때로 몰려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런 딸아이가 맘껏 덕질을 할 수 있도록 예지네 집은 방과 후 놀이교실 역할을 했고요.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예지네 집에 와서 간식도 먹고, 신나게 덕질도 하며 떠들 수 있었거든요.


한 번은 딸아이와 친구들이 나이 제한이 걸려서 영화관 입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빠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15살 이상 입장 가능 조건을 보호자 동행으로 해결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빠는 여중생 9명을 이끌고 영화관에 갔고 앞줄에 자리 잡아 열광하는 그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영화관 맨 뒷줄 구석에 자리잡고, 덕후들이 응원봉을흔들고, 노래를 따라하며 영화 관람 하는 모습을 관람(^^:;)했다고 합니다.

딸은 맘껏 덕질하고, 친구들과 맘껏 놀며 초등과 중학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다소 단호한 엄마와 달리 딸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는 아빠의 지지 역시 딸의 자유도와 집중도를 돞이는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저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아빠는 딸에게 “왜” 라는 질문을 자주했고, 딸은 “왜”라는 질문을 만나 “예지 생각에는 말이야” 하며 또박 또박 본인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은 맘껏 하며 지내던 딸아이가 '하고 싶음의 정점'을 누렸던 시절이 바로 거캠에서 보낸 1년 6개월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스스로 끼니를 챙겨먹는 훈련이 되어있던 딸은 아침, 저녁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거캠의 환경 속에서 직접 요리해서 본인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친구, 동생들의 식사도 챙겼습니다. (그래서 거캠에서 예지 엄마로 불리기도 했다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살며 매주 머리색을 바꿔보기도 하고,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다양한 콘퍼런스, 만남, 과제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시각으로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으니까요.

딸 아이가 거캠 다니던 시절의 놋북(최근 구입한 맥북 프로에는 스티커가 없어요. 이 역시 심경의 변화인듯 싶어요)과 매주 바뀌던 머리색

쓸 말이 있을까,,, 스스로 반문하며 노트북을 열었는데, 한 편의 글을 작성하게 되었네요.


오늘 쓴 글에서 전하고 싶었던 건

부모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보게 하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가정, 학교, 사회가 긴밀한 협조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교, 사회의 성숙도와 효율성은 부모가 나서서 바꾸기 어려우니 결국 부모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고요, 부모의 역할도 내 아이의 성격, 역량 그리고 우리집 환경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으니 이 역시 충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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